<34> 금빛 두 물결이 만나다(세종시 연서면 번암리 조천합수부~세종시 연동면 합강리 금강 합수부)

▲ 공원 개발로 야생동물들이 몸을 숨길 곳이 없어진 미호천 둔치에서 사람들의 접근에 당황한 고라니가 갈팡질팡 달음질 하고 있는 모습과 마지막 남은 홍시를 먹고 있는 청딱구리 수컷(타원 안쪽).

둔치에 조성한 공원, 이용자 없이 황량한 모습만

무분별한 개발로 세금 갉아먹는 애물단지 만든 꼴

원래 모습 잃어가는 하천…야생 동물도 갈곳 잃어

금강 합수부, 행복도시 건설로 자연·생태계 파괴

해가 바뀌어 1월 중순 마지막 구간은 세종시 연서면 번암리 조천 합수부에서 시작해 월하리, 보통리와 행정중심복합도시 경계선인 한별리를 지나 두 금빛 물결이 만나는 금강 합수머리에 이르는 길이다. 대략 8km에 이르는 이 구간은 미호천 우안을 따라 자전거 길이 이어져 있어 비교적 걷기 수월하고 단조로웠다. 마지막까지 하루에 걷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눈이 많이 내려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 월하리와 봉암리까지 걷고 보통리부터 한 번 더 날을 잡아 걸었다.

첫째 날은 눈과 바람 때문에 불편했지만 기온은 차지 않아 걸을 만 했다. 조천과 만나는 합수부에는 연꽃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겨울이라 사람도 없었고 황량하기만 한데, 미호천 둔치 무성한 억새풀 속에는 유난히 되새들이 분주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홍시를 유유자적 홀로 먹고 있는 청딱구리를 만났다. 홍시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사람의 접근도 눈치 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한겨울에 홍시를 먹는 청딱구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우안을 따라 조치원읍 월하리 쪽에는 유난히 공장들이 많았다. 미호천 물길 덕을 보는 공장들이다. 폐수가 제대로 정화돼 배출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제방 둑과 거의 접해 있는 한 제지 공장에서는 엄청난 물량의 종이가 세척되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부디 물이 제대로 정화돼 미호천으로 흘러 들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월하리에서 봉암리 방향으로 이어진 길은 자전거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조성돼 있다. 미호천 하류로 갈수록 지천과 만나는 합수부가 점점 넓어졌다. 이곳 언덕배기에는 물길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미호천의 진객 황오리 등 다양한 겨울 철새들을 비롯해 쇠백로와 중대백로 등이 눈을 맞으며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덕바지에서 내려오면 월하리와 봉암리 사이로 흐르는 국촌천이 미호천과 합류한다.

봉암리부터는 자전거 길을 이용하지 않고 미호천 둔치 길로 내려와 물길 가까이 걸었다. 겨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봉암리 둔치에는 버드나무 군락지가 멋스럽게 조성돼 있었고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큰개불알꽃 같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미호천 우안 군부대를 지나 봉암천과 합수하는 길목에 다다랐을 때 바람을 동반한 눈이 내려 답사를 마무리 하고 다시 날을 잡아 걷기로 했다.

두 번째 시도한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겨울날씨 같지 않게 따뜻했다. 봉암천과 합수하는 넓은 둔치에는 시민을 위한 공원이 조성돼 있지만 역시 추운 겨울 탓인지, 도시와 멀리 떨어진 때문인지, 사람들을 볼 수 없었고 시설물은 방치돼 있었다. 행락철이 된다 해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외에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게 미호천 지킴이 강전일씨의 이야기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친수공원 조성 남발이 자치단체들의 세금을 갉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구간 둔치에 무분별하게 조성된 친수공간에 비해 부분적으로 하중도와 자연습지가 중간 중간에 남아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봉암천 다음으로 연기천이 미호천과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지천이다. 연기천은 세종시 연서면과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접경지로 계획도시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연기천 합수부를 시작으로 미호천 우안 쪽으로는 한별리, 누리리, 세종리, 좌안으로는 연동면 용호리, 다솜리, 부강면 합강리, 집현리로 이어진다.

연기천 합수부를 지나면 우안 쪽 둔치에 인공식물원이 조성돼 있고 이어서 행복도시 미호천 우안과 좌안을 잇는 보롬교가 건설돼 있다. 다리 아래로 넓은 둔치의 조성습지공원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구간부터 넓어진 둔치를 인위적으로 개발해 미호천의 원형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류로 갈수록 넓어진 둔치를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물길에 살던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갈 터전을 잃었다.

행복도시는 계획도시다. 공원을 조성하려면 물길 제방 둑 바깥쪽으로 일정부분의 공간을 확보해 공원을 만들고 제방 둑 안의 물길 둔치에는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남겨두는 것이 수자원 보호 차원에서나 자연생태계, 혹은 자연경관 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둔치 친수공간 조성을 위해 기존에 있던 버드나무와 같은 수생식물을 모두 베고 상수리나무, 은행나무 등 산과 육지에서 자라야할 나무들을 인위적으로 식재해 놓은 것은 치수나 물길 보호 차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반기민 농학박사(농촌활성화 연구소 소장)는 “나무를 식재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생육환경이 중요하다. 산에서 자랄 나무와 물가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가 다르다”며“하천둔치에 산에서 자라는 나무를 마구잡이로 식재한다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할 뿐더러 치수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답사 날에도 넓은 둔치를 황량하게 밀어 듬성듬성 가는 상수리 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탓에 몸을 숨길 곳이 없는 고라니들이 사람들의 접근에 당황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월산교가 눈에 들어왔다. 월산교를 지나면 바로 금강과 만나는 합수머리다. 행복도시가 탄생하기 전 합수머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충청권 천혜의 자원이었다. 철새들의 낙원이었으며 미래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현재는 공원이 인위적으로 조성돼 있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합강리의 오토캠핑장 조성은 지나쳤다. 지형적으로 낮고 나무 그늘이 없어 오토캠핑장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금강과 합류하는 합수부 하중도와 모래톱에는 매년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라 부를 만큼 엄청난 철새가 몰려와 장관을 이루던 곳이다.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합강공원 정자에 올라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몇 년 전 보았던 오리들의 힘찬 비상이나 수천마리 겨울철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햇빛아래 물결만 하얗게 빛났다.

세종특별자치시가 2012년 7월 1일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행정도시로의 결정 이후 국무총리실 이전을 시작으로 중앙행정기관의 이주가 이어지고 있다. 본래 청주·공주·대전·천안 등의 대도시와 인접해 근교농업이 발달했고 상권은 약했던 지역이나, 인구가 빠르게 급증하고 있어 급속한 도시화가 예상된다. 면적 465.23㎢의 세종시 관할구역은 종전의 충청남도 연기군 일원을 중심으로, 공주시 의당면 일원, 장기면 일원, 반포면 일원, 충북 청원군 부용면 일원 등이 포함된다. 정부의 직할 광역자치단체이며,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 지역개발 및 국가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탄생된 것이다. 세종시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광역자치단체지만 기초자치단체를 두지 않으며, 중앙정부로부터 재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특례를 받는다. 2012년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수산식품부,국토해양부, 국세청, 소방방재청 등 중앙행정기관 16개와 소속기관 20개가 차례로 이전했다. 1개읍 9개면 14개동 12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시를 탄생시킨 여러 이유나 명분은 좋지만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 이래부터 존재하고 물길의 원형을 살려 놓은 채 도시를 만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온 땅을 포클레인으로 평평하게 밀고 선을 긋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 이젠 달라져야 한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강전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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