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진(秦)나라가 멸망하자 천하는 혼란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영웅호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중 강자는 항우(項羽)였고 유방(劉邦)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두 영웅이 형양 전투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유방은 항우의 기세를 얕잡아본 나머지 크게 패하여 영음지역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항우는 그런 유방을 놓치지 않고 재차 포위해 버렸다. 천하 패권을 움켜쥘 절호의 기회였기에 대세를 몰아 유방의 군량수송로를 끊어버렸다. 며칠이 지나자 유방의 군사들은 굶주림에 지쳐 사기가 저하되고 말았다. 결국 유방은 항우에게 사신을 보냈다. 형양을 경계로 영토를 나누자고 제의하였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항우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당장에 유방을 사로잡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상황이 위급하게 돌아가자 유방의 전략가 진평(陳平)이 계책을 건의했다.

“한시바삐 여기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왕께서는 포로가 되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항복하는 척하면서 그 틈을 타 이 성을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유방이 그 계책에 따라 항우에게 사신을 보냈다.

“싸움을 멈추면 유방은 곧 항복하고 투항하겠다.”

항우가 사신의 말을 믿고 바로 전쟁을 멈추었다. 그러자 항우의 병사들은 유방이 항복하러 온다는 소식에 기뻐 만세를 불렀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들뜬 기대 때문이었다. 모두들 유방이 투항하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성문 동쪽에 2000명이나 되는 미인들이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유방이 탄 수레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항우의 병사들이 이 기괴하고 찬란한 광경을 보기 위해 진영을 벗어나 몰려나갔다. 삽시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항우 또한 부하들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유방을 기다렸다. 천천히 다가오는 행렬 속에서 수레에 타고 있는 유방을 유심히 바라보던 항우의 부하들이 뭔가 의심쩍은 느낌을 받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는 유방이 아니라 유방의 부하 기신이었다. 항우가 노하여 기신에게 물었다.

“유방은 어디 있느냐?”

기신이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이미 서문 쪽으로 빠져나갔소!”

이에 항우가 크게 분노하여 분장한 기신을 화형에 처하고 말았다. 달아난 유방은 비록 전쟁에서 패하였지만 다시 재기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본기’에 있는 이야기이다.

금선탈각(金蟬脫殼)이란 애벌레에서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매미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말한다. 싸움에서 불리한 경우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은밀히 달아나는 36계의 계책 중 하나이다. 인생은 위기에 처했을 때 침착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 길이 보인다. 달아난다는 것은 비록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재기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끝내 이길 것이며, 이를 모르는 자는 수고하고도 끝내 패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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