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 청주흥덕도서관 사서

얼마 전, 서랍 속을 정리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나누었던 편지가 가득 담긴 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결혼할 때 친정집에서 챙겨온 상자인데 몇 번의 이사에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짐에 섞여 있다가 이제야 발견된 상자였다. 열일곱 여고생의 삶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내용은 연애편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청소년기의 역사이며 위로였다. 20년이 지나 다시 읽게 된 그 편지들이 현재의 내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1973년 1월, 이오덕은 한 신문에 실린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보고 동화작가 권정생을 찾아갔다.

당시 이오덕의 나이 48세, 권정생은 36세. 두 사람은 그때부터 이오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병마와 생활고로 힘들어하면서도 아동문학의 꿈을 놓지 않았던 권정생을 이오덕은 문학적 후견인으로 글쓰기를 격려하고 그 글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제 일처럼 앞장 섰다.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라는 게 이오덕의 일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30년간 편지로 나눈 이야기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서간집으로 출간됐다.

두 사람이 나눈 편지글을 읽고 있노라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걱정하는지 느껴진다. 약값, 연탄값 걱정부터 나오지 않는 원고료 걱정까지 하면서 권정생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던 이오덕의 마음이, 병마와 가난에 죽음과 직면하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제 스스로 가난하게 살면서 계속 아동문학을 하고 싶다는 권정생의 의지가 편지글 곳곳에 담겨있다.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에게 건네는 애틋한 마음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람과 사람이 이뤄내는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만남이 이 편지에 있다.

“이발을 꼭 한 달 반 만에 한 것 같습니다. 싹싹 깎아 버리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옷도, 속옷 겉옷 필요 없이 자루처럼 하나만 입고 음식도 하루 세끼는 너무 많아요. 한 끼만으로 살 수 있게, 그리고는 잠들지 말고 눈을 감은 채 오래 오래 앉아 있고 싶습니다.” (권정생)

“거기 일직 교회는 햇볕이 앉은 곳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추울까요.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 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이오덕)

이오덕과 권정생이 떠난 지 십여 년이 흘렀다. 이제 아이들에게 이오덕, 권정생은 낯선 사람들이 되었지만 권정생이 남긴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의 글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글로 남아있다. 20년전 친구에게 받았던 편지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었듯, 이오덕, 권정생이 남긴 편지글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사람에게 전하는 위로와 온기를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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