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대문을 나섰다. 집 앞에 있는 매봉산을 가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작년 늦가을 이후 처음인 듯 싶다. 봄이 되면서부터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 어느새 계절을 넘기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운동을 하는데 게으른 나는 코앞에 산을 두고도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이유는 가지가지였지만 천성이 게으른 것이 모든 핑계의 근원이었다. ‘집 나간 놈 밥은 있어도 자고 있는 놈 밥은 없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다. 게으름은 만인이 경계해야 할 적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이번 주말에는 꼭 가야지 다짐에 다짐을 했던 터였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건너면서부터 매봉산 입구까지는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을 지나야 한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잘 단장된 길을 두고 굳이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골목길을 따라가는 것은 한눈 팔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뻥튀기집이다.

‘해성제과’다. 이름도 촌스럽다. 촌스런 이름만큼 가게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요즘 손바닥만한 틈이라도 있으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온갖 세련된 그림과 문자로 치장하는 판에, 해성제과는 운동장만한 가게 전면의 통유리에 투박한 글씨로 ‘각종 튀밥 도산매’와 전화번호만 적혀 있을 뿐이다. 가게 안도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여섯평쯤 되는 해성제과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쪽으로 ‘펑!’ ‘펑!’소리를 내는 뻥튀기 기계만 두어대 있을 뿐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어김없이 펑펑 소리가 들려온다. 멋이라고는 조금도 부리지 않는 해성제과의 커다란 글씨가 보인다. 글씨 사이로 분주한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보인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최신형 기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해성제과 뻥튀기 기계는 반자동이다. 기계들이 저마다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순식간에 수북하게 뻥튀기를 토해낸다. 그러면 아주머니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온전한 놈과 불량품을 골라 비닐자루에 넣는다. 

내가 해성제과를 좋아하는 것은 이곳에만 오면 마음이 풍족해지기 때문이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그득 쌓여있는 하얀 뻥튀기 자루를 보고 있노라면 곳간에 쌓여있는 그득한 쌀가마를 보는 것처럼 속까지 든든해진다. 더욱 좋은 것은 ‘파치’라고 하는 불량 뻥튀기이다. 이놈들은 튀기는 과정에서 깨졌거나 정품처럼 부풀지 못해 밀려난 작은 놈들이다. 나를 더욱 부럽게 만드는 놈들은 이런 파치다. 세상의 대부분 파치는 버려지지만 해성제과의 파치는 그렇지 않다. 불량품인 파치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이천원만 주면 과장을 보태 한자루를 준다. 그래서 더더욱 풍성하다. 나는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이제껏 한 번이라도 뻥튀기처럼 사람들을 풍족하게 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온전한 놈도, 잘못 튀어져 불량품이 된 놈도 누구에게나 만족을 주는 그런 뻥튀기가 그래서 부럽다. 쓰다가 튼 글을 보고도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파치 난 뻥튀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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