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비암사 백제대제는 1983년 시작되어 매년 4월 15일에 올린다. 세종특별자치시가 주최하고 세종시향토사연구소가 주관하며 비암사와 전씨종친회가 후원한다. 행사 준비는 비암사가 맡고 세종시향토사연구소가 진행한다. 백제 역대 왕이나 백제 부흥을 위해 목숨 바친 충신과 그 과정에서 고통 받은 연기지역 민중의 극락왕생을 비는 큰 제의이므로 종교와 종파를 떠나서 세종시민의 뜻을 온전히 담으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큰 제는 오전 11시에 시작되는데 10시쯤 도착해 보니 석가모니부처님 괘불탱화를 모시는 등 화려한 제단이 이미 마련됐다. 영산재 범패의식보존회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의식 이전 행사로 염불과 범패를 보여주고 있었다. 제단 앞에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나와서 바라춤과 나비춤을 보여주었다. 우렁찬 게송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날라리나 북과 비파는 비운의 백제 역대 왕과 대신, 절망에 빠진 유민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곡과 같았다.

범종이 우렁차게 5번 울리는 것으로 의식이 시작됐다. 경과보고는 백제대제의 동기와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백제 32명의 왕과 호국영령을 위로한다고 말할 때는 참석자 모두가 백제의 유민이 된 듯 숙연해졌다. 헌다(獻茶)는 세종시장, 시의회 의장, 교육감 순으로 해 관가의 냄새가 났지만, 헌화와 분향은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격식 없이 진행돼 좋았다. 하기야 추모의 뜻이 크고 작음이 있겠는가? 헌다와 헌화가 혼합된 것은 불교의식과 유교의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였다. 뜻이 앞서야 하는 것이니 모든 시민이 참여하려면 형식의 틀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세종 특별자치시장의 추도사가 끝나자 영산재 범패의식보존회의 바라춤이 있었다. 나비춤이나 바라춤은 불가 의식에서 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대중의 소망을 발원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세종시 소리예술단의 반야심경 가야금 병창이 있었다. 반야심경을 가야금에 실어 병창으로 부르려는 시도가 가상하다. 살풀이춤도 감동적이었다. 동작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손끝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발끝은 땅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아미타의 정토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높이와 깊이만큼 절실한 염원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하얀 소복에 자주고름, 쪽진 까만 머리와 하얀 얼굴이 춤보다 아름다워 마치 비천상(飛天像)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불교합창단의 축원화정 찬불가를 들으며 막을 내렸다. 비암사나 연기지역 불비상에 담은 왕생극락의 염원이 백제대제로 승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의식이 끝나고 점심공양을 했다. 비암사에서 마련한 산채비빔밥과 미역냉국이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비암사 신도회 보살들의 얼굴에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미소를 담고 있었다. 야단법석이란 시끄럽고 무질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제대제는 자유스러운 가운데 엄숙하고 정성스럽게 진행됐다. 참반하는 이들에게 엄격한 의식절차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기본 정신만은 잃어버리지 않게 인도해 품위가 돋보였다.

모두가 하나 되어 1500년 전의 민중의 한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은 애잔한데 녹음은 오히려 아침보다 더욱 짙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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