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상(商)나라 주왕(紂王) 무렵, 기자(箕子)는 사람을 헤아리는 판단이 뛰어나 현자라 불리었다. 삼공의 벼슬 중에 가장 높은 태사(太師)의 직위에 있으면서 주왕을 보필했다.

어느 날 주왕이 이전에 쓰던 나무젓가락을 버리고 상아 젓가락을 쓰고 있었다. 그걸 본 기자는 그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지금까지 쓰고 있던 토기그릇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물소 뿔이나 옥으로 된 그릇을 쓰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런 그릇은 콩잎 같은 채소와는 어울리지 않으니 들소, 코끼리, 표범의 태반 같은 미식을 찾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 미식을 먹게 되면 더 이상 거친 베옷을 입지 않을 것이고, 소박한 궁전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크게 놀란 것이었다.

기자의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주왕은 미식을 먹기 시작했고, 궁궐을 웅장하게 다시 지었고, 화려한 치장을 하며 천하의 귀한 것들을 찾게 되었다. 기자는 장차 재앙이 찾아오리라 슬피 탄식하며 주왕에게 아뢰었다.

“소신은 결과가 무서워서 그 시작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3년이 지나자 주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지육림을 만들고, 사람을 함부로 태워 죽이는 형구를 만들었다. 그러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럼에도 주왕은 밤낮으로 연회를 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신하들에게 날짜를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냐?”

하지만 주변의 어느 신하도 며칠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자 주왕은 관리를 보내 기자에게 알아오도록 했다. 관리가 기자의 대문 앞에서 소리쳤다.

“기자는 오늘이 며칠인지를 천자께 아뢰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듣자 기자는 가슴이 또 한 번 쿵하고 내려앉았다. 왕명을 어찌해야 할지 잠시 당황했던 것이다. 이내 자신의 집사에게 말했다.

“천하의 군주가 되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른다면, 그런 천하는 분명 매우 위태로울 것이다. 천하에 날짜를 아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나 혼자 안다고 하면 이 또한 위태로운 일이다. 너는 가서 전하라. 내가 술에 취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이후에도 주왕의 폭정이 계속되자 기자는 간절히 충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미친 척하며 주왕을 떠났다. 얼마 후 상나라는 주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오랜 후 기자가 상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다가 그만 탄식하고 말았다.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 무성하구나. 이토록 슬픈 꼴이라니, 이는 다 주왕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창해유주(滄海遺珠)란 큰 바다에 남아 있는 진주라는 뜻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자나 지혜로운 자를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20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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