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섭 / 시조시인·청주시의회 전문위원

첫 새벽 달려나온 오미실 가는 길은, 키 큰 미루나무 마을을 비질하고, 목화향(木花香) 손짓을 하는 어머님의 별 고향/ 흐르는 실개천에 버들잎 하나 되어, 사시 장 철 모진 바람 잠겨 있는 눈뜬 부초, 되 보면 뿌우연 먼지 먼지 같은 초려 한 칸/ 떡 버들 등에 업힌 빛 고운 청개구리, 굽어보면 깊은 강물 흰 머리칼 갈대 숲에, 곱 닿게 화장을 하고 숨어버린 낮 달이여. 나의 고향 ‘오미실 가는 길’ 한 수(首)이다.

사람은 개개인의 가정근본과 성격이 모두 다르게 구성돼 있다. 그러나 한 울타리로 엮어져 있는 한민족이란 공동체의 큰 줄기는 같다.

우리 집안도 한국 사회의 여느 집안과 다름없이 78세의 큰 누님과 73세의 큰 형님, 또한 61세의 작은 형님 그리고 막내로 자란 필자로서 아주 평범한 형제지간으로 구성 돼있다.

오늘 (음력 4월 초파일)은 4대 성인 중 한 분이신 부처님을 봉축하는 석가탄신일이다.

이렇게 성스럽고 좋은 날에 우리들의 큰 형님께서 큰 누님에 이어 어머님의 두 번 째 자손으로 태어나신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전벽해라는 옛말이 있듯이 19세기 근대사회라는 세계파고의 거센 풍랑을 겪으면서 국체마저 잃어버린 일제치하 에서 마치 풍전등화와도 같은 아주 어려웠던 국란의 시기에 농촌의 허름한 집에서 태어나 조국해방의 광복시대를 거처 6·25 동족상쟁의 동란에는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소낙비처럼 퍼 붇는 총탄 속에서 총알세례를 맞기도 했던 우리들의 큰 형님께선 그러한 인연으로 청장년세월의 대부분을 군에서 보내신 후 장교로 제대하셨다.

밤이면 반딧불과 광솔불로 불 밝히며 붓글씨를 쓰던 시대에서부터 연필과 펜, 타자기, 컴퓨터의 전자정보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시는 동안 가슴에 쌓인 한(恨)과 한(限)이 태산보다도 더 크고 많겠지만 얼굴 한 번 찌푸리시는 일 없이 항상 웃으시는 얼굴로 대하여 주시는 큰형님, 바로 우리들 큰형님의 마음과 얼굴이 부처님이 아니신가하는 생각이다.

부처님 오신 날 그리고 큰 형님 오신 날. 생신을 축하드리면서 옥체 강녕하시고 장수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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