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황제는 존엄하지만 그 명령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부터 황제는 자신의 말이 옳은 지 그른 지 심사하는 급사중(給事中)이라는 관직을 두었다. 황제의 명령이 잘못된 것이라면 기각할 권리가 있는 막중한 직책이었다.

왕거정(王居正)은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 이 직위에 있었다. 하루는 황제가 자신의 병을 고친 태의 왕계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또 다른 직위를 하사하였다. 황제의 종지를 받은 왕거정은 세세히 검토한 후에 이를 거절하였다. 황제가 이 소식을 듣자 노하여 급히 신하들을 불렀다.

“병이 나면 의원을 불러 치료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인들도 병이 나면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합니다.”

이에 황제가 다시 물었다.

“치료를 받은 후에 병이 나으면 의원에게 어떻게 사례를 하는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돈을 주기도 하고 술이나 비단을 선물로 보내기도 합니다. 치료 효과에 따라 그에 맞는 보답을 하지요.”

그러자 황제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황제인 내가 내 병을 치료한 의원에게 마음대로 보답도 할 수 없단 말이오? 내가 다시 명을 내리기 전에 당장 왕거정에게 내 명을 따르도록 하시오!”

대신들이 서둘러 물러나 왕거정을 찾아갔다.

“이보게, 보아하니 별 일도 아닌 것 같으니 고집은 그만 부리게. 황제께서 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네. 어서 황제의 명을 따르도록 하게.”

하지만 왕거정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황제를 찾아갔다. 황제는 그를 대면하자 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왕거정이 표정 하나 없이 침착하게 황제께 아뢰었다.

“병을 치료한 의원에게 보답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치료한 일이 크고 작음에 따라 수고비를 주는 것도 일반 관례입니다. 하지만 황제께서는 입장이 다릅니다. 왕계선은 미천한 기술로 황실에 들어와 의원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태의라는 관직을 얻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충분히 많은 녹봉도 받고 있습니다. 황제께서 그에게 녹봉과 관직을 준 것은 그의 의술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신하란 직분을 다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쫓겨나거나 벌을 받는 것이지요. 지금 왕계선이 황제의 병을 잘 치료했다면 그것은 직분을 다한 일입니다. 그러나 치료를 잘했다 해서 또 다른 관직을 하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그 말에 화난 기색을 누그러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이는 ‘송사(宋史)’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도저히 설득할 수 없는 고집 센 사람을 일컬어 만우난회(萬牛難回)라 한다. 만 필의 소가 끌어도 돌려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고집대로 행하려 할 때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그래서 고집 센 군주는 지혜로운 신하를 만나면 국정이 잘 풀리고, 어리석은 신하를 만나면 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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