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아들 최귀동’ 창작 공연을 보고
‘귀한 아들 최귀동’ 창작 공연을 보고
  • 김천수 기자
  • 승인 2016.05.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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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시설 꽃동네의 설립과 음성품바축제가 생기게 한 모티브가 일명 ‘거지 성자’로 불리는 故 최귀동 할아버지다.

지난 18일과 19일 음성문화예술회관 무대에 극단 ‘해로마’의 창작뮤지컬 ‘귀한 아들 최귀동’이 올랐다.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음성읍 일원에서 열리는 제17회 음성품바축제를 기념하는 공연으로 오웅진 신부와의 만남과 꽃동네 설립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에서 그의 박애 정신과 실천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살아 돌아와 꽉 찬 객석을 향해 “이 한 몸 다할 때까지 진실로 이 길을 걷는다면 언젠가 이뤄지리…”. 일제 강제 징집을 겪고 아픈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 가난하면서도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얻어다 나눠주는 삶을 산 최귀동.

1976년 음성군 금왕읍 무극성당으로 부임하면서 그 해 최귀동을 만나게 된 오웅진 신부.

시골 성당에서 첫 사제 활동을 하게 된 오 신부는 무극교 다리 밑을 근거지로 한 그의 나눔의 삶에 감복하고 신부로서의 반성과 용기를 얻는다. 오 신부는 “가난하다 꿈조차 가난할까. 성자인가 살아있는 예수인가”라고 감동하고 그 해 용담산 자락에 ‘사랑의 집’ 움막을 지어 18명의 걸인들의 둥지를 만든다.

이것이 꽃동네 설립과 천원 돕기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가 있게 한 계기다. 이 과정에서 최귀동 할아버지는 가톨릭 봉사대상을 수상하고 상금 전액을 오 신부에게 맡기고 1990년 생을 마감한다.

음성의 시골이 고향인 기자는 1976년 중학교 시절이었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실제로 시골 마을에도 깡통을 들고 아침 끼니 때면 남의 집을 찾는 거지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난하던 집안 사정이지만 어머니는 보리밥일지라고 조금이나마 깡통에 한 주걱 퍼 주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들을 쫓아 다니며 놀리곤 했었다. 정작 그 아이들의 행색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시절이었다. 만 40년이 지난 지금 그 시골에 살고 있다. 하지만 거지는 물론 아이들 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마침 이 창작뮤지컬을 보면서 그 때 그 장면을 회상하고 그 시대를 돌아보게 됐다.

이제는 그들을 연극과 축제를 통해서 웃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풍요의 시절이다.

하지만 마음의 풍요까지 닿아 있을까. 품바축제 방문객들도 이 공연이 보여주는 웃음과 아픔의 의미를 축제장에서 동시에 새겨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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