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사실 이 책은 별로 소개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몇차례 정독을 해보니 저자 자신이 자신의 공부를 마무리 했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쓴 글이어서 시론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상의학을 제창한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과 비슷한 처지의 책입니다. 이제마도 이렇게 한 번 보는 게 어떻겠나 하는 정도의 제안을 하고 마무리를 뒷날에 두었던 것인데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갔죠. 한동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증거가 이 책의 뒤에 나옵니다. 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이것은 좀 더 공부하면서 보충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이 책에서 공부의 첫걸음을 뗍니다. 그래서 어렵고 완성작도 아니지만 이곳에서 소개하게 됐습니다.

이 책을 읽으려면 역을 알아야 합니다. 주역만이 아니라 정역을 알아야 합니다. 정역은 김일부가 제창한 학설이고 민족 종교에서 떠받들어서 만고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이론입니다. 그렇지만 수정 가능성이 없는 이론은 이론이 아니라 신앙에 불과합니다. 정역을 실용성의 차원에서 연구하기보다는 신앙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오늘날 정역 연구의 큰 흐름입니다. 그래서 정역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속편합니다.

이 책의 가치는 이렇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이론으로 밥 먹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명한 어떤 진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이 이 이론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 의심 없는 학문은 쓸모없는 이론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학문은 의심을 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음양오행론의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큰 얼개를 옳다고 전제해놓고서 거기에 현상을 맞추는 겁니다.

이 책은 음양오행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나름대로 설명해보려는 노력에서 나온 책입니다. 그것을 주역에서 찾았고, 주역의 역리에 비추어서 음양오행을 설명해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세대들이 맹목으로 받아들인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해 자신만의 생각으로 옛 사람들의 생각을 확대 해석해 음양오행론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학설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였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것이 학문의 발전을 가져올지 어떨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후학들에게 사표가 되어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는 디딤돌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성공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상을 너무 일찍 떠남으로 인해서 이 이론은 아직도 허공에 높이 뜬 채로 아직 세상에 뿌리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이론을 현실 속으로 뿌리 내리게 한다면 그것이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둔 실용철학인 한의학을 완성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의학은 서양의학의 거대한 도전 앞에 일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시대의 격변으로 인해 생기는 위기는 안팎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문제인 것은 안에서 생기는 위기입니다. 누구의 눈으로 몸을 보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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