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지난 토요일 청주 모 성당에서 있었던 혼사에 갔다가 하객으로 온 선배를 만났다. 청주에서 살다 음성으로 낙향한 선배는 시를 썼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사십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있다. 혼인성사가 끝나고도 우리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성당 경내 벤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녁나절이 되었다.

음성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시골로 더 들어가야 하는 선배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갈등이 일었다. ‘시외버스 정류장까지만 데려다 줄까, 아니면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나?’ 선배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나는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두어 평 남짓한 마당에 푸성귀를 심곤 했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위해 그리하기보다는 빈 땅을 놀려서는 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보여주기가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올해는 봄이 한참 지나도록 나는 아직까지도 손바닥만 한 뜰을 비워두고 있었다.

음성까지 온 길에 이번에는 ‘꼭’ 모종을 사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선배와 함께 면 소재지에 있는 농약사로 갔다. 닭장처럼 생긴 층층선반에는 온갖 모종들이 전시장처럼 쌓여있었다. 어떻게 키울까 하는 염려는 않고 파릇파릇한 모종에만 욕심이 생겨 이것저것 마구 샀다. 그리고 커다란 퇴비도 한 포 샀다. 차 트렁크에 모종과 퇴비를 실으며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빈 땅을 채울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당으로 나섰다. 골을 파고 두둑을 만들었다. 제법 밭 모양이 갖춰졌다. 그걸 보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 때 어떤 말이 번쩍 떠올랐다. 농약사 사장님의 ‘흙과 퇴비를 골고루 섞어야 한다’는 말을 깜박했다. 기껏 만든 두둑을 무너뜨리고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퇴비를 땅에 쏟아 붓고 삽으로 흙을 파 뒤집으며 섞었다. 다시 두둑이 만들어졌을 때는 이미 정오가 되었다. 땀이 줄줄 흘렀다. 힘에 부치니, 어제 음성에서 모를 살 때의 초심은 이미 오간데 없었다.

농약사 사장님은 ‘퇴비가 독하니 섞고 난 사흘 후쯤 어린 모종을 심으라’고 일렀었다. 그러나 달인 농사꾼의 가르침은 귓등으로 흘린 채 나는 이미 내 편한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거름도 많이 주면 좋을 테고, 바로 심어도 별일이야 있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또다시 땀범벅이 되는 것이 싫어 그냥 심고 말았다.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나 뜰을 보니 모종이 이상했다. 모든 모종들이 하나같이 허리가 ‘처억’ 꺾인 채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모종 편에 서서 생각하지 않고 내 편함만 생각한 불찰이었다.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단순한 진리도 생각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기도 했다. 죽어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마찬가지다. 그 모습이 할미꽃보다도 더 처연해보였다. 부랴부랴 조루에 물을 담아다 뿌리며 법석을 떨었지만 아무래도 다시 한 번 더 육거리 시장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모종 사 나르는 돈으로 사먹는 게 싸겠다!” 아내의 목소리가 곧 들려올 것 같다. 거름도 줄 줄 모르는 초보농사꾼이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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