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비암사 3위의 불비상 중 보물 제 367호인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名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은 가장 늦은 689년에 만들어졌다. 예술적 가치를 측정했는지 보존의 정도를 측정했는지 국보가 되지 못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들여다볼수록 백제 유민의 발원이 가장 절실하게 표현된 진수이다.

높이가 56.9cm라고 하는데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三尊石像)보다 약간 크고 몇 군데 투박한 흠집이 보인다. 전체 모양은 아미타삼존석상의 광배처럼 상부가 뱃머리 모양으로 생겼고, 위로부터 아래로 약간 둥그스름하게 내려와서 중간보다 밑 부분이 약간 좁아졌다. 앞면에만 불상을 새겼고 측면은 조용하다. 뒷면에는 명문(銘文)이 있는데 육안으로 다 읽어내기는 어렵다. 설명에 의하면 ‘기축년에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아미타불과 보살상을 삼가 만들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전체를 4등분해 하단은 연꽃무늬 대좌가 있으며, 그 위로 연못인지 바다인지 물결무늬가 있고 연꽃이 솟아난 위로 아미타불의 연좌를 이루고 있다. 물결무늬 좌우에는 사자가 서로 마주보고 부처님을 떠받들고 있다. 사자 앞에는 합장하는 화생(化生:부처님의 지혜를 믿어 정토에서 보살과 같은 몸으로 왕생한 몸)이 합장하고 있다. 연좌 위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아미타불은 상호가 약간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려우나 수인이나 법의는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부처님 두상 뒤에는 원광이 자비의 빛을 보내고 있다. 좌우에 보살과 나한상은 키도 크고 모두 입상이다. 원광이나 손을 든 모습이나 장식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불상 위로는 수많은 중생과 나무, 꽃, 연주를 모아 놓았다. 좁은 공간에 정토의 아름다움을 다 모아 놓고 싶은 착한 소망이 엿보인다.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서방정토는 정말 이만큼 평화로운 세계일까? 불비상을 시주한 이는 백제 부흥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부모님이나 인근 중생, 그리고 역대 백제왕의 극락왕생이라는 절실한 발원을 여기 담고 싶었을 것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이 작은 돌에서 극락정토 모습을 찾아내어 발현했을 것이다. 금이성이 보이듯 장수는 돌에서 국가 보존의 강한 의지를 찾아내었고, 불비상에서 보듯 불제자는 돌에서 부처님과 아름다운 정토세계를 찾아낸 것이다.

보물 제368호인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跏石像)도 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과 같이 673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비석 모양이다. 이름 그대로 미륵보살이 반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을 중앙에 모셨고 4면에 모두 조각이 있으나 전면이 중심이 된다. 맨 위에는 비석처럼 옥개가 있고 아래에는 대좌가 있으며 네 귀를 모두 꽃으로 장식한 기둥 모양을 새겨서 미륵보살이 계신 곳이 감실(龕室)임을 나타내었다.

미륵보살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비슷한 자세로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머리 뒤쪽에는 원광의 모습으로 보주가 있고 반가상 주변에 영락을 새겼다. 아랫부분에는 꽃을 꽂은 화병이 있고 좌우에 스님과 공양주 모습의 사람이 있다. 지붕 모양에는 나무와 나뭇잎으로 장식을 하였고 측면에도 보살상을 새겼는데 미륵보살의 협시불 모습으로 보인다. 이면에는 보탑이 가득히 조각됐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