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 이뤄 자연 생태계 유지하는 습지
소우주 이뤄 자연 생태계 유지하는 습지
  • 김정애 기자
  • 승인 2016.05.09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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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겨울에 침묵하는 습지의 오묘한 세계(청주시 오송읍 궁평리 병천천 합수부~세종시 조치원읍 번암리 조천 합수부)
▲ 궁평리~동평리 구간의 습지, 홍수와 기후조절, 수질정화, 생태계유지 등의 기능을 갖고 있다.

 

물속에 잠겨 있는 물풀, 수중에 산소 공급

풍림·방조제 기능…홍수 등 천재지변 완화

탄소 저장으로 기후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발달된 모래톱에 겨울의 진객 황오리 장관

 

12월 초순 미호천 우안을 따라 걷게 된 청주시 오송읍 궁평리 병천천 합수부는 세종시와 청주공항을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로 어수선했다. 이곳에서는 오송생명과학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곳이 아파트와 같은 현대식건물 촌이 돼 버린 것이다. 미호평야라 불리는 넓은 들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오직 쌀농사가 전부였던 평야에는 시설채소를 재배하느라 여기저지 비닐하우스단지가 조성돼 있다.

합수부 우안 쌍청리 쪽에는 건축폐기물 관리 업체가 있어 엄청난 규모의 건축폐기물을 야적한 것이 하나의 산과 같았다. 야적해놓은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이곳에서 발생하는 분진이 바람이 불면 마을로 날아가 마을 사람들은 빨래를 밖에 널 수 없을 정도다. 인구가 밀집된 생명단지 쪽도 피해에서 비켜 갈수 없다. 관의 관리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합수부에서 충북선이 지나는 미호철교 사이에는 모래톱이 잘 발달해 있다. 이 모래톱에 겨울의 진객 황오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황오리는 한강 하류, 김포평야, 서산 간월호, 금강 중류와 인근 논경지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로 이맘때만 되면 미호천 유역에서 볼 수 있다. 황오리의 크기는 약 57~64cm 정도로 앉아 있을 때는 전체적으로 황갈색을 띄며, 암수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컷의 목에는 검은색의 띠가 있다. 날아갈 때는 날개 끝이 검은색이며 나머지 날개는 흰색에 가깝게 보인다. 암수 모두 다리와 부리는 검은색을 띄고 있다.

황오리는 물길을 끼고 생성된 호소, 초원, 간척지, 농경지, 습지 등에서 생활하며 각종 식물이나 작은 동물들을 먹지만, 겨울에는 주로 논에 떨어진 벼 이삭이나 얕은 물에서 자라는 물풀이나 작은 동물을 먹는다. 겨울을 나는 시기에는 항상 무리를 이루며 날아갈 때는 여러 개체가 고양이 울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이동한다.

미호철교에서 우안을 따라 하류로 2km정도 이동하면 오래전 엄청난 규모의 미루나무 단지가 있었던 곳을 지나간다. 1980년대 이전 청주 인근의 학생이라면 학창시절 한두 번쯤 소풍을 왔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미루나무는 이미 벌목했고 그 자리는 농경지로 이용되다 4대강 사업 일환으로 국가하천법에 의해 농업이 금지되면서 일부는 친수공간으로 조성됐고 일부는 둔치로 발달하고 있었다.

이 구간에서 넓은 습지와 큰 둠벙을 볼 수 있었다. 겨울가뭄이 심하던 터라 둠벙에는 물이 많지 않았지만 주변에 온갖 수생 식물이 자랐던 질퍽한 습지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작고 물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못보다는 컸다.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 늪이라니,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겨울 땅이 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심스러운 발자국만큼이나 모든 소리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던 것도, 물에서 움직이던 물방개나 물고기들도, 갈대와 억새 등 온갖 수생식물들도. 모두 진한 흔적만을 남겨두고 습지에서 거대한 자연의 생태계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천이 자연생태하천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습지의 발달이 중요하다. 늪과 소, 둠벙 등과 함께 발달하는 습지는 상류로부터 흘러온 오염된 물질을 받아들여 정화한 후 깨끗한 물을 하류로 공급한다. 모래톱이나 하중도의 기능과 같은 안정적인 물 공급에도 습지의 역할이 크다. 습지에 조성된 나무 등은 수변부의 깎임을 막아 주고 지하수를 채워주는 풍림과 방조제의 기능을 해 홍수와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을 완화해주는 것이다.

특히 습지는 탄소를 저장해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야생동물에서부터 조류, 어류, 식물 등 다양한 생물들이 공생하는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는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많은 생물들이 살아 갈수 있는 조건은 습지만의 독특한 생육환경으로 식물의 일차생산성이 매우 높아 상위 먹이사슬에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습지가 생산한 풍부한 영양을 함유한 물을 하류로 운반해 생물의 생산력을 높여준다.

이러한 습지는 육지화 되기 전 과정으로 세월이 흐르면 농경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살던 식물과 동물의 멸종도 가속화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멸종 위기 동물인 수달을 비롯해 물새와 같은 철새들이 습지가 파괴될 경우 돌아 올수 없게 된다. 남한강변 하천범람원습지에서 생육하는 단양쑥부쟁이와 매화마름이 4대강 사업으로 습지가 파괴돼 멸종위기에 처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습지인 만큼 그 안의 생명들도 진중하다. 갈대나 억새, 줄 풀 등이 자랐다는 흔적이 버드나무 가지와 함께 얼기설기 어우러져 있고 둠벙 위에는 버드나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습지는 봄과 함께 침묵을 깨고 요란하게 기지개를 켤 것이다. 물풀의 왕국답게 온갖 물풀들이 푸른 잎으로 솟아오를 것이고 물속에서 침묵하던 노랑어리꽃과 개구리밥, 부레옥잠과 붕어마름들이 물 위로 떠오를 것이며, 봄을 지나 여름이면 햇빛을 받아 빠른 속도로 습지를 잠식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습지를 에워싸 사람의 접근을 꺼리게 만드는 갈대와 억새와 같은 거친 식물들을 무시할 수 없다. 갈대는 대부분 줄기의 일부와 뿌리가 물속에 있고, 그 일부가 물 위로 나오는 정수식물이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자생하는데 옛 사람들은 갈대가 처음 순이 돋으면 채취해 식용으로 먹었다. 그러다 여름을 지나면 성숙한 원줄기로는 발을 만들어 볕가리개나 건조기구로 사용했다.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어 썼으며 이삭에 붙은 털은 솜 대용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하천에 애물단지라도 되는 양 취급되고 있지만 버릴게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갈대와 함께 습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물은 억새다. 갈대와 같이 여러해살이 벼과 식물로 제방 둑에 나는 억새는 가을의 물길 풍경을 멋스럽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뛰어나다.

줄은 땅속줄기는 굵고 옆으로 벋는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잎집은 두툼하고 마디 사이보다 길다. 옛 사람들은 줄기와 뿌리줄기를 먹기도 했지만 주로 가축 먹이로 이용됐다. 민간에서 빈혈이나 불에 데었을 때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물풀이 사람과 자연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인 이유 중 하나는 물속에 잠겨 있는 물풀은 물속에 들어온 햇빛과 몸 전체로 빨아들인 물, 그리고 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양분을 만들고 산소를 밖으로 내보낸다. 물풀이 만들어낸 산소 덕분에 많은 물고기와 곤충들이 물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할 습지다. 겨울이라는 침묵의 계절이 아니라면 습지가 갖고 있는 날것의 원형을 엿볼 수 없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앞 다퉈 소리를 낼지 상상해 보았다. 겨울동안의 침묵이 없다면 불가능할 봄의 생성이다.

이구간의 제방 둑에는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노란 들국화가 수북이 피어 지지 않고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를 실감하는 것이다. 둔치에는 인주 솜으로 사용하는 박주가리 솜털이 멋스럽게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고 버드나무에 곤충이나 진드기 따위의 기생이나 산란에 의한 자극으로 식물의 조직이 혹 모양으로 이상하게 발육한 충영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 구간에서는 황오리 뿐아니라 왜가리, 비오리, 논병아리, 멧비둘기, 직박구리, 방울새 등의 조류가 다양하게 발견됐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강전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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