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탈춤을 보면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운명을 상징처럼 볼 수 있습니다. 탈춤은 평민과 양반 사이에 낀 서리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양반사회를 비판한 마당극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이 전통을 모두 내다버릴 것으로 간주하고 서양의 현대 사회를 기준으로 재구성하는 체제를 갖추는 바람에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들은 살아남아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깡그리 사라져가니까 나라에서 나서서 시늉으로 보존한다고 마련한 것이 무형문화재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도로 남아있죠.

이런 제도 때문에 간신히 살아남은 분야가 바로 탈춤을 비롯한 여러 민중 연희들입니다. 그런데 명맥만 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게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이 분야를 살려낸 사람들이 1980년대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한 당시의 젊은 대학생들이 민중의 숨결이 서린 놀이와 문화를 배우려고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늙은 할아버지들만 겨우 남은 마당극에 새파란 젊은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탈춤만이 아니고 전통 기예 부분은 거의 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풍물의 경우, 나중에는 운동권이 사람들 동원하는 도구로 비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동력으로 하여 전통 기예는 많은 부분에서 살아났고, 또 이들이 점차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전통 기예는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습니다. 지금은 각 사회단체에서 이런 것을 배우는 교실을 열어서 우리 사회의 한 문화로 살아남았습니다.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젊은 학생들이 배우는데, 도대체 이론이 없고 모두 주먹구구식인 겁니다. 바로 그때 교과서처럼 나타난 책이 이 책입니다. 탈춤을 하는 사람들은 ‘탈력’이라고 줄여서 부르더군요. 지금까지도 이보다 더 좋은 책이 나오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정도로 이 책은 탈춤을 궁금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할 정도로 분명한 지식을 주었습니다.

1980년대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자각이 막 시작되던 단계였기 때문이죠. 그런 상태에서 이렇게 탈춤의 내면세계까지 설명할 정도의 좋은 책이 나왔다는 것은, 그 분야를 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활에 관한 책을 쓰면서 보니 이런 것을 더욱 절감합니다. 아직도 우리 전통 문화 부분은 학문으로 정리되지 못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거의가 방송에서 먼저 한 번씩 건드리는데, 정작 학문에서는 그런 발걸음을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언론에서 건드린 내용들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이 등장인물들의 주장만 실려서 학문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길이 먼 형국입니다. 전통문화 부문은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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