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장자의 ‘목계’ 이야기
[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장자의 ‘목계’ 이야기
  • 충청매일
  • 승인 2016.05.0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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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수시로 겪는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상대가 걸치고 있는 겉옷만 보는지 모르겠다. 그까짓 옷은 허물에 불과하다. 그저 벗으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나는 아내와 함께 출판사를 한다. 출판사를 한 지 어느새 삼십년이 되었다. 겉모습은 내가 사장이고, 아내는 종업원이다. 그런데 실상은 아내가 출판사의 중추다. 활판부터 배운 나는 컴퓨터가 나오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내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 디자인과 편집을 한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를 할 줄 몰라 완성된 책을 배달해주고 서류를 가져다주는 일이 고작이다. 내가 하는 일은 당장이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내가 하는 일은 일정기간 수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아내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일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나만 찾는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사장이라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아내가 받으면 무시를 하고 하대를 한다. 나는 원고의 내용이나 진척 상황에 대해 실무자인 아내처럼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 말은 신뢰하고 아내 말은 애초부터 믿으려하지 않는다. 잘못된 생각으로 진실을 보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장자의 ‘목계’ 이야기가 있다. 어떤 마을에 싸움을 잘 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닭이 있었다. 인근에서 그를 대적할 상대는 없었다. 자신이 최고수라고 생각한 닭은 기고만장해져서 거들먹거리며 설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산 너머 어떤 마을에 이제껏 한 번도 싸움에서 져본 일이 없는 닭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 세상에 최고수가 둘이 될 수는 없었다. 최고수 닭이 득달같이 산을 넘어가 결투를 신청했다. 두 닭이 서로를 노려보며 결투가 시작되었다. 최고수가 먼저 선수를 쳤지만, 상대 닭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최고수는 마지막으로 숨겨둔 비장의 술법을 연속으로 상대에게 퍼부었다. 그러나 상대는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았다. 상대는 이제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고수 중 고수였다. ‘이러다간 내가 죽겠는걸!’ 겁이 덜컥 난 최고수 닭은 꽁지에 연기가 나도록 달아나버렸다. 최고수가 도망을 간 다음 그 자리에 남아있던 상대 닭은 목계, 즉 나무로 깎은 닭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다 일을 그르친 최고수 닭이나, 종업원이라고 무시하며 하대하는 사람이나 무명에 싸인 것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깍듯하게 예를 갖춰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인쇄 일을 한다고 처음부터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이유도 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니 무조건 새로 하라며 막무가내로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다.

돈을 주고 하는 일이니 그저 무조건 시키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위험하다.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분이나 사회 지도급 위치에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존재다. 불가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수억겁의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 귀한 존재를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종당에는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처럼 천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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