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꽃샘바람 쌀쌀하게 불어도 나무 가지마다 움트는 새싹은 피어난다. 어느새 푸른 녹음이 짙어가는 신록의 계절이다. 뜰 앞 화단에도 영산홍 꽃 몽우리가 무더기로 피는 것을 보면, 나팔꽃 심은 씨는 싹이 터 흙을 들어 올리고 솟아나는 것을 보면,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와 새끼에게 먹여 주는 것을 보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연의 섭리라기보다 하늘같은 어머니의 은혜였음을 깊이 생각 하게 된다.

유년시절 여름이면 어머니는 뽕을 따 누에치고, 가을이면 목화밭에 목화송이 따다 씨 빼는 쐐기소리, 겨울이면 무명실 잣는 물레소리, 할아버지 할머니 명주 옷감 다듬이질 소리 나는 곳에는 항상 어머니가 계셨다. 동지섣달 긴긴밤 할아버지 솜바지 저고리 깃는 바느질에 새벽닭 울 때까지 하셨다. 졸음에 겨워 바늘에 찔린 손가락 싸매시고도 일 하시던 어머니를 바라보는 내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시고 평생 일만하시다 중풍에 반신불수가 되셨다. 어머니를 간병하며 병고에 신음하시던 어머니는 아파서 우셨지만 나는 너무나 슬퍼서 울었다. 하고 싶은 말씀 태산 같아도 입술만 가냘프게 움직였다. 끝내 마지막 한마디도 못하시고 꺼져가는 촛불처럼 명을 다하시던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세월의 강물이 얼마나 흘렀던가. 머나먼 북망산(北邙山)에 잠든 모정(母情)!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치신 사랑!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었다 한들 어찌 그 정(情)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머슴처럼 일만하신 어머니! 언제 한번이라도 건강을 챙겨드리고 편히 모시지 못한 회한(悔恨)이 두고두고 내 가슴을 적신다. 가정은 부부중심의 핵가족화가 급속하게 이루어 진지 오래다. 산아제한을 하던 정책이 출산장려로 바뀌어 많은 혜택을 준다 해도 출산율은 감소하기만 한다. 저 출산 고령화는 모두가 고민해야 되는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정보화시대까지 가정문화의 핵(核)은 어머니들이 아닌가.

어머니들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학교의 선생님이 최고의 스승이 되기를 바라지만 참된 스승은 ‘어머니‘가 아닐까. 그만큼 어머니는 자식 사랑, 가족사랑, 부모공경에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과 정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근본이다. 인성교육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중심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 하늘같은 은혜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5월 8일 어버이날이 다가 오지만 나는 꽃 한 송이 어머님 가슴에 달아 드리고 싶어도 달아드릴 수가 없다. 아! 어머니여, 오래오래 사시기를 그토록 빌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생각하는 마음에 울컥하고 목이 멘다.

나무는 고요히 있으려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樹慾靜而風不止) 아들이 봉양하고자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아니한다(子慾養而親不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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