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제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시느냐’는 안부 전화였다. 제자가 소식을 전해줄 때 교사는 기쁘다. 그것도 좋은 소식을 전해 줄 때는 더욱 행복하다.

그동안 그 제자와는 통화를 몇 번 하긴 했지만 졸업 후 전화를 다시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는 요즈음 대학생활을 하면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새내기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제자는 작년까지 필자가 지도하는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뒤늦은 나이에 굳은 결심을 하고 고등학교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고민도 참 많았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고등학교를 다닌다고하기가 그렇게 쑥스러울 수가 없었고, 고등학생이 배우는 그 어려운 수학과 영어를 비롯한 교과목을 따라 갈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학업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간절함 때문에 결국은 진학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방송고 입학식 날 학교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학교 주변을 몇 번이나 배회한 끝에 겨우 용기를 내어 입학식장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입학식장에는 뜻밖에도 자기 또래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후로 제자는 학교에 오는 날만 기다렸다고 했다. 학교에 가서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을 만나 그동안 심중에만 있었던 말들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중학교 졸업 이후 불러보지 못했던 ‘선생님’도 이제는 큰 소리로 불러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선생님!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이던가! 이제는 중학교만 졸업했다는 학력 때문에 느끼게 되는 직간접적인 소외감으로 늘 힘들었던 일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교과목에 대한 자신감도 차츰 생겨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면서 이제는 고등학생이라는 긍지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학력에 대한 유형·무형의 차별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과거를 잊고 열심히 학업에 전념했다고 했다.

방송통신고 수업을 하다보면 나이가 많은 학생일수록 오후까지 끝까지 남아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한 자라도 더 익히려는 그 모습은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긴장하게 하게도 한다.

한편 이들 성인 학습자들을 지도하시는 방송통신고 선생님들은 무척 피곤하다. 평일에는 일반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다가 겸직으로 방송고 업무를 맡아야하고 일요일이면 수업을 맡아서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송통신고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의 수업 태도가 너무도 진지해서 수업에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제자는 그렇게 3년의 방송통신고 과정을 마치고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또 다른 도전인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선생님들은 많이 힘들고 피곤하다. 교권이 땅에 떨어진 것은 옛날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있는가 하면, 교사에 대한 지나친 요구와 간섭 때문에 지친다고도 한다. 그래도 아직 교단에는 피곤하고 힘든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싶다. 아직도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께 전화 한 통 드리고 싶어 하는 제자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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