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 청주시립목령도서관 사서

헨리 지루의 ‘일회용 청년’의 부제는 ‘누가 그들을 쓰레기로 만드는가’이다. 다소 파격적이어 보이는 이 진단 앞에 우리는 우리가 순응해오고 있는 청년을 둘러싼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교육학자이자 학계와 대중을 아우르는 문화 비평가이며 사회 평론가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두 가지는 첫째, ‘교육’은 비판적이며 저항적으로 일구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한국처럼 청년이 힘들다. 둘째, 저자가 한국 교육에 명성을 떨칠 수 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는 그렇게 상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정치를 해제하고 비판한 이 책에서 저자가 주시하는 것은 바로 청년이다. 한국사회처럼 미국 역시 청년을 대접하지 않는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잘 실행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청년들의 불행과 좌절, 그리고 폭력에 대한 순응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나 앞으로의 사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미국에서 국가와 미디어, 어른들은 청년들이 무르익지 않았을 뿐 더러, 그들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력을 만드는 것은 사회와 청년을 외면한 정치다. 청년의 사소한 장난도 폭력으로 정의되며, 인종차별로 한 집단의 삶을 핍박하고, 신자유주의의 경쟁에 따라 공유재를 줄이고, 청년의 요구를 폭력적 존재의 부당한 이야기로 만드는데, 이 악순환의 완성으로 청년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길을 택한다.

저자는 총 5장의 챕터로 위기에 처한 ‘청년의 미래’와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한다. 먼저 청년이 처한 현실에 대해 기술하고, 그 다음 자신의 청년 시절로 돌아가 당시 가졌던 생각과 피부로 느끼던 사회에 대해 기술하며 매우 흥미로운 관점으로 청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다음으로는 청년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 계급과 같이 인종 차별로 인해 더욱 고립돼 있는 소외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뛰어넘을 힘은 비판적 교육에 있음을 역설한다. 교육이 ‘운동’이고 ‘노력’이라면 그것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 자연히 주입되는 여러 폭력적인 공기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정책뿐 아니라 폭력적인 미디어가 청년들이 비판적 시민으로 크는 것과 대중문화에서 벗어나 ‘형성적인 문화’를 만드는 걸 막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는 청년들이 국가의 외면으로 생긴 부담을 개인 능력의 문제로 소급시켜버리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일반 대중의 시선을 바꾸고 주체가 되기 위해서 청년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야 함을 말한다.

헨리 지루의 말처럼 ‘청년이 대접받아야 한다.’, 혹은 ‘대접받으면 좋겠다.’라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헨리 지루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으로서 청년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왜일까? 청년은 어른으로 가는 세대이며, 또 아래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침이 되는, 즉 미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각박하고 바쁜 삶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만들고, 이는 청년들의 삶의 고단함으로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청년의 미래의 중요성과 폭력적 사회 시스템, 우리가 대안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회의 모습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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