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책 소개를 하면서 현실 정치를 애기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글로 쓰여진 것을 읽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라는 만행에 못지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월이 우리나라에서는 50년간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런 야만의 세월을 거치면서 알고 싶은 것은 많고 읽고 싶은 것도 많은데, 알 방법이 없고 읽을 방법이 없는 그런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들어도 씁쓸한 일이고, 돌이켜보면 어처구니 없는 세월이면서도 그런 얘길 꺼내면 뒷방 늙은이 넋두리하는 꼴이 되죠. 그렇지만 어떤 책을 말할 때는 그런 먼지 나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 세월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느냐면, 해방 전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알아보려고 하면 자료가 없는 겁니다. 해방 전후라고 해야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불과 30년 전의 이야기이고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 들어보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도 교과서에도 볼 수 없고 어떤 기록에서 그 당시의 실정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역사책을 읽다가 갑자기 불이 꺼져서 아무 것도 읽을 수 없게 된 시절이 바로 해방 전후의 시기입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시기를 연구하려고 하면 정보기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도서관의 당시 문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의 이야기가 역사서로 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런데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 처음으로 그 무렵의 한국 실정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굉장한 반향이 일었습니다. 지금 보면 상식에 가까운 내용들을 소개하는 수준이지만 그 무렵에는 목숨 걸고 드러내야 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속으로 5권까지 나와서 해방 전후 시기의 한국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를 알려면 이 책을 피해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올바로 본다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민족의 지상명제인 통일을 생각할 때 그 통일의 첫걸음은 분단될 무렵의 정황을 정확히 보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은 반통일 세력이 틀림없습니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순리를 따릅니다. 그 순리를 막고 순리를 이해하는 앎의 통로를 막는 것은 순리대로 가게 놔두면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한 줌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꾀가 만든 불행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너무 오래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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