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 국립청주박물관 자원봉사회

며칠 전, 호사스런 안복을 누렸다. ‘대 겸재전’이 서울에서 열려 다녀왔다.

대 작가의 그림을 만나러 가기 전, 사전 지식이 더 필요해 책을 펼쳤더니 ‘겸재는 금강산 그림을 독특한 그의 화풍으로 그려 이후 화가들로 하여금 제작되는 금강산 실경도의 토대를 이뤘고,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보다 대상을 변형시켜 어떤 점은 단순화하고, 어떤 점은 강조해 화면에 역동감을 부여하는 능력이 탁월한 화가. 그리고 고유색 짙은 한국적 산수화의 경지를 개척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짧은 지식으로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함이 많았지만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즐겼다.

그림 속에 고즈넉히 불어오는 바람, 폴폴 솔내나는 향기가 맡아지는 듯 느껴졌다. 공부하는 사람의 지식이 깊고 얕음과 필력의 강약에도 관계가 된다는 말이 있던가.

 이의 표본이라도 되듯 서릿발 같은 필력으로 그린 강건한 화풍은 꼼짝없이 작품 세계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다.

자연을 보는 아름다움의 척도가 지금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런 잘 그려진 작품을 보노라면 마치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을 맑게 볼 줄 아는 높은 눈을 가진 듯한 생각마저 든다.

설사 탁월한 안목을 지니지 못했어도 자연을 가슴에 품고 사는 기본 품성, 그런 생활 철학을 갖고 있었던 듯 싶다.

자신만의 화풍을 그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했을까.

아무리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작가라 할지라도 수만장의 그림을 그려보고 난 후에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디 그림 뿐이랴.

문학에도 음악에도 건축에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종종 잊을 때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질곡의 역사속에 힘든 세월을 보낸 탓에 인내하며 각고의 노력을 쏟고 또 이를 통해 얻는 기쁨을 많이 놓치고 살아왔다.

단번에 결과를 얻으려는 측면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다. 요즘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마음의 여유를 누릴 틈이 없다.

 많은 것이 변화하는 현실에 우리는 쫓아가기도 바쁘다. 더군다나 팍팍해진 살림살이, 밝은 빛보다 잿빛에 더 가까운 경제가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미래를 위해 우리의 좋은 덕목을 챙겨보자. 훌륭한 화가가 명작을 남기기 위해 혹독한 연습기를 갖듯 우리도 뭔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추구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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