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1990년대 들면서 민족주의의 국학 열풍에 가장 강렬하게 반응한 역사가 고조선과 고구려입니다. 특히 고구려는 만주지역을 토대로 중원을 넘보며 몽골지역까지 통치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가장 호기심을 끈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정말 고구려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고 역사학자들의 연구 실적도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그런 갈증을 다소나마 풀어준 것이, 1980년대 독재정권의 유화책으로 비공식 형태이긴 하지만 북한의 연구 업적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영인 해적판 형태로 돌아다니다가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재출판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국가보안법에 걸려서 옥살이를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책은 고구려의 역사 전체를 한 눈에 훑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대부분 고구려는 특히 평양으로 옮겨오기 전의 역사가 정확하지 않아서 논쟁이 많습니다. 논쟁이 많으면 그것을 한 가닥으로 정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통사나 개설사가 나오기 힘듭니다. 남한의 경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서 대중들이 훑어볼 통사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사회주의 체제가 획일화라는 비판을 받지만, 먼저 전체의 줄기를 잡아놓고 그것대로 망설임 없이 밀고 나가는 점은 분명 장점입니다. 내부에 고구려에 대한 여러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그것을 최대한 합의할 수 있는 형태로 전체의 줄거리를 정하고 각자 해당하는 부분을 써와서 그것을 합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듭니다. 이 책도 그런 방식으로 나와서 고구려에 대해서는 북한이 인정하는 권위 있는 책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고구려의 모든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좋은 책이 남한에서도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초기에 고구려에 관심을 갖다가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돌아보지 못하여 무슨 책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토대로 다른 책을 참고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듯하여 소개합니다.

고구려가 새삼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입니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는 중국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한민족의 역사였는데, 최근 들어 중국의 태도 변화로 고구려도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바뀌었고, 거기에 맞추어 중국의 역사 정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여러 가지 현실을 감안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이지만, 그것이 냉정한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 해석이 아니라면 그 땅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관련국가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역사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용하려는 자들의 입맛대로 풀이됩니다. 그것이 역사의 불행을 자초하는 빌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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