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휴대폰 없이 살기
[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휴대폰 없이 살기
  • 충청매일
  • 승인 2016.04.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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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외출을 하며 휴대폰을 잊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는 순간 휴대폰 생각이 떠올랐지만, 되돌아가는 것이 귀찮아 그대로 출발했다. 더구나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도 턱밑에 닿아 있었다. 평상시에도 이것저것 잘 잊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별일이야 있을까 싶었다.

친구와 약속한 아파트로 갔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겠다던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아파트 마당에서 친구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종무소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주변에 있는 아는 이의 사무실로 향했다. 전화를 빌려 집으로 연락하니 아내가 펄쩍 뛰었다.

친구가 아파트 입구에 기다리고 있단다. 전화번호를 물어 친구에게 겨우 연락이 닿았다. 내가 비슷비슷한 아파트 입구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기다렸던 것이었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나온 길에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자동차를 손보기 위해 정비소로 갔다. 그런데 살펴보던 사장이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리겠다며 연락처를 달란다. 휴대폰이 없어 연락해도 받을 수가 없으니 난감했다. 잠시 생각 끝에 마침 점심때도 되고 해서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느적느적 밥을 먹고 다시 갔다. 내 자동차 부품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정비소 사장 말이 오늘 중으로는 힘들겠단다.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연락할 길이 없어 일단 뜯었단다. 오늘은 몇 군데 들러 일처리도 해야 하는데 차만 쓸 수 없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대학 도서관으로 갔다.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무인발급기 화면에 잘못된 비밀번호라며 문자가 뜬다.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주변을 살펴봐도 공중전화가 없다.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학교 내에는 공중전화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대학본부까지 걸어갔다. 그러고도 담당직원의 전화를 빌려 집으로 연락해 몇가지를 알아본 후에야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휴대폰만 있었다면 단번에 끝냈을 일을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 전 맡겨놓은 겨울양복을 찾기 위해 세탁소에 들렀다. 이미 여러번 세탁물을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었다며, 오늘은 꼭 찾아와야 한다고 아내가 신신당부를 했었다. 보관증을 달란다. 있을 리 없었다. 그러면 고객 아이디를 대란다. 알 리 없었다. 또 직원의 전화를 빌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내가 외출을 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내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아내의 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가운데 숫자가 네 자리로 늘어난 이후부터는 좀처럼 외워지지가 않았다. 더구나 휴대폰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굳이 외울 필요가 없었다.

제 물건을 눈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찾지 못하고 집으로 걸어오며, 내 스스로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졌다. 휴대폰이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휴대폰 없이 살기가 이렇게도 불편한 것일까. 하기야 손바닥만한 마라도에서도 휴대폰으로 짜장면을 주문하는 세상이다. 이러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휴대폰 없이는 못살겠다는 말이 나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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