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청리 유적, 신석기 농경문화 이해 단서
쌍청리 유적, 신석기 농경문화 이해 단서
  • 김정애 기자
  • 승인 2016.04.04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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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미호천 유역 쌍청리, 신석기 및 삼국시대 주거유적지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신촌동 옥산교~오송읍 쌍청리 병천천 합수부)
▲ 병천천은 금강 수계의 하천으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에서 발원해 미호천 합수부까지 약 40km에 이른다. 쌍청리 쌍청교에서 상류를 향해 바라본 병천천 사진은 9월 29일의 모습이고 현재는 다리 앞 우측 습지일부에 대해 벌목작업을 한 상태다.

토기·석기류 등 각종 유적 병천변 구릉에 위치

삼국시대 움집터, 내륙지방 주거 연구 자료로

난민정착지에서 부자 마을 된 덕촌리 미평마을

모래땅을 객토한 뒤 시설채소·낙농으로 고소득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옥산교에서 시작된 답사는 우안을 따라 옥산면 덕촌리와 신촌리, 오송읍 쌍청리로 이어져 병천천과 만나는 궁평리 합수부까지 진행됐다. 청주시 무심천변을 따라 이어진 좌안의 자전거 길은 작천보를 지나 덕촌교(미호천교)에서 끝나고 덕촌교로 올라와 다리를 건너서는 우안을 따라 세종시 금강 합수머리까지 이어진다.

덕촌교는 미호천 우안과 좌안을 잇는 다리이며 미호천 양안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덕촌교는 오래전 경부고속도로로 사용되었으나 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옆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현재는 미호천교로 이름을 바꿔 지방도로로 사용되고 있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 구간이다. 이 구간의 물길은 비교적 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바닥의 모래가 깨끗한 한편이다. 40년 전만해도 재첩이 흔하게 잡혔고 철새들의 낙원이었으나 미호천 주변으로 제지공장을 비롯한 제조업체들이 급격이 증가하면서 공장 폐수 등으로 인해 물이 오염돼 있는 상태다.

이 구간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덕촌리는 반곡, 보촌, 광담말, 광촌, 서촌, 괴동, 신기, 지월, 삼성골, 팔모종, 미평이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중 미호천 제방을 따라 좌안에 형성된  미평(美坪)마을은 유래가 남다르다. 행정구역상 덕촌 3리에 해당하는 미평마을은 뒤쪽으로는 부모산 자락이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미호천이 흐르는 곳으로 제방공사 전까지만 해도 미호천과 연결된 드넓은 갈대밭으로 인가가 살지 않았던 곳이다. 제방공사가 끝나고 1941년 처음 난민 15호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해방 후 1946년 충북도지사가 덕촌리 일대의 입안하천을 개답해 난민촌 정착지로 선정, 난민주택 10호를 건립해 주고 이들 주민에게 전답을 분배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마을이 현재의 미평마을이다. 미평이라는 이름은 당시 옥산면장이었던 정윤모씨가 이 일대가 아름다운 들판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며 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고속도로 주변 마을 주택개량 정비사업 일환으로 마을의 환경개선이 이뤄지기도 했다.

난민들의 정착촌이었던 미평마을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지에서 사람들이 더 유입되면서 1991년에는 51가구에 인구수가 239명에 이르는 큰 마을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하천모래였던 땅을 비옥한 토지로 만드는 객토사업을 벌여 시설채소와 낙농으로 고소득 영농마을이 되었다.

덕촌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우리 마을은 한 성씨로 맨들어진 집성촌은 아니지만 마을사람들이 단결이 잘돼 부자마을로 소문났지. 모래천지였던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드느라고 마을사람들이 애썼어. 예전에 미호천 물이 많을 때는 제방이 넘칠까봐 대피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제방 둑이 넘친 적은 없었어. 살기 좋은 동네여”라고 자랑했다. 

덕촌리는 독립운동가 검은(儉隱) 정순만(1876~1911)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덕촌리 사람들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3·1절 기념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선생이 덕촌리에 세웠던 옛 덕신학교 복원공사 기공식을 가졌다. 정순만 선생은 고향에 덕신학교를 설립, 근대교육을 선도했으며 안중근 의사 의거 계획을 주도하고 수감된 안 의사 구명운동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이와 함께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조신문을 창간, 운영했으며 한인사회 지도자로 활동하는 등 민족운동을 펼치다 39세에 생을 마감했다. 덕신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09년 정순만 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었지만 1925년 옥산초등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됐던 것을 정순만 기념사업회가 올해 복원키로 한 것이다. 복원사업이 완료되면 덕신학교는 인성교육과 애국심고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옥체험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덕촌리와 신촌리를 지나면 미호천의 열두 번째 지천인 병천천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호계리와 쌍청리를 지나 궁평리에서 미호천과 합수한다. 병천천은 금강 수계의 하천으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에서 발원해 미호천 합수부까지 약 40km에 이른다. 병천이라는 이름은 잣밭내(백전천 栢田川)와 치랏내(칡밭내=갈전천 葛田川)의 두 물이 이곳에서 합해 어우러지므로 ‘아오내’, ‘어우내’, 혹은 줄여서 ‘아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병천천 아오내 장터는 기미년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를 불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며 매년 이곳에서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병천천은 최근 오송보건단지 조성과 옥산면 일대의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인해 더욱 중요한  미호천의 지천이 되고 있다. 병천천이 유입되는 쌍청리(雙淸里)는 마을이름처럼 두 개의 물길이 흐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당감산, 들판, 봉도리, 새터가 있다. 당감산은 쌍청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성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 의해 1993년 발굴조사가 실시된 쌍청리 병천천변 50m정도의 얕은 구릉지대는 신석기 및 삼국시대 주거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2기의 움집과 빗살무늬토기,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적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토기가 나와 ‘금강식토기’로 설정되었다. 금강식토기(錦江式土器)는 대전 둔산 유적, 영동 금정리 등 금강유역 주변에서 주로 쓰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연속된 찍은 무늬가 특징적인 토기이다. 미호천이 금강의 제1지류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증명해주는 유물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쌍청리 유적지는 농경문화를 시사하는 각종 석기류를 비롯해 유적의 위치가 강변이 아닌 내륙의 구릉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신석기시대의 농경을 이해하는 데 좋은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삼국시대의 움집터는 평면이 아닌 사각형인데, 두 벽에 ㄱ자 형태의 배수도랑 시설을 갖춘 형태로서 중부 내륙지방의 삼국시대 주거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구간의 하천둔치는 넓은 편으로 제방에서 발견된 너구리, 족제비 등의 로드킬과 배설물 등이 확인된 것으로 보야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겨울이지만 관절에 좋다는 우슬을 채취하기 위해 마을어른들이 하천둔치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옛 사람들이 인주로 사용했다는 박주가리 솜털이 눈에 띄었다. 쌍청리에 이르는 구간에 황오리를 비롯해 힌뺨검둥오리, 새백로, 중대백로 등을 비롯해 논병아리, 멧비둘기, 방울새, 말똥가리, 집밥구리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쌍청교 아래를 흐르는 병천천 아래 하천이 청주시의 벌목공사로 제 모습을 잃었다는 점이다. 병천천이 쌍청교 아래에서 섬과 소(沼)를 형성하면서 물길의 흐름을 방해해 쌍청리 윗 마을인 호계리의 농경지 침수를 일으켜 민원이 발생한다는 것이 작업의 이유다. 쌍청리 이장인 박광순씨에 따르면 “쌍청리에서 물이 제때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호계리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하고 있어 하천정비작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주시 환경단체 관계자는 “무조건 나무만 베고 방치하는 형식이 아닌 제대로 된 하천정비작업을 해야 한다. 퇴적물이 쌓여 하상이 높아졌다면 하상퇴적물을 걷어내는 정비작업을 벌여 수질도 개선하고 홍수피해도 개선하는 것이 순서다. 나무 주변에 쌓여 있는 퇴적물 정화작업과 굵은 나무의 잔가지치기 등을 통해 물길이 원활하게 빠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쌍청교 아래 벌목작업은 민원인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보이기 위한 공사였다”고 밝혔다.

실제 현장에는 벌목 후에 치우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어 자칫 비가 많이 내릴 경우 물길을 막는 주범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강전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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