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필자는 요즘 매우 바쁘다. 학교에서 학생들 지도하랴, 틈틈이 시도 쓰랴, 이렇게 신문 구독자 여러분과 만나는 칼럼도 쓰랴 정말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일상을 더욱 바쁘게 하는 게 또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한국어 공부다. 가까운 친구들은 필자보고 ‘그 나이에 아직도 한국어를 배우느냐’고 농담을 한다. 그렇다.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법도 배운다. 필자가 한국어 가르치는 법을 배운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또 웃으며 묻는다. 반평생을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사람이 아직도 가르치는 법 하나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느냐고 핀잔 반 농담 반 한다.

그렇다. 삼십 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을 필자는 국어를 가르쳐 왔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어를 가르치는 법에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다기보다 아주 잘 모르겠다는 표현이 바를 듯싶다. 사실 필자는 요즘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원자격증’에 도전 중이다. 처음 공부할 때는 한국어와 국어를 구분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한국어’라는 용어가 ‘국어’와 구분하여 쓰인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국어’와 ‘한국어’는 엄연히 다른 분야이고 전혀 다른 학문의 틀이 있었다. 가르치는 방법 역시 내국인 학생들 특히 국어에 상당한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는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어 수업과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 더군다나 자국어로 이미 언어중추가 상당히 굳어진 성인인 외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적잖이 당황도 했다.

필자와 같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분 중에는 20대 젊은이들도 있고 필자와 같이 뒤늦게 공부하는 분들도 있다. 한국어를 공부하며 필자는 왜 이 분야에 이렇게 늦게서야 관심을 갖게 됐나 내심 후회도 됐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법을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모습에 고마움까지 느끼기도 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의 장래가 밝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나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올해 급기야 필자가 근무하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도 외국인 학생이 입학했다. 이제 필자를 포함한 교직원들은 한국어로 그들을 교육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한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때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명분도 생긴 셈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고 또 상당수의 선생님들은 이미 그런 분들을 위한 교육에 상당히 익숙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라도 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였던 재외동포에게 보다 정확한 한국어를 익히게 해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국어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바른 국어 쓰기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또한 한국어를 국어로 하는 우리가 스스로의 국어생활을 반성해 볼 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에게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가 바로 한국어 원어민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국어생활을 다시 반성해 보고 많은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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