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미호천 역사를 상징하는 ‘소로리 볍씨’(청주시 옥산면 남촌리 작천보~흥덕구 신촌동 옥산교)

▲ 작천보 근처에 조성된 어도(魚道)에서 눈이 내려 시야가 흐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기적처럼 고라니가 카메라 안에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었다.

창포 심어 자정능력 키운 소로천

소하천 가꾸기의 희망을 보는 듯

어이없는 소로리 볍씨 유적지 관리

안내판 없이 사유지옆에 표지석만

귀중한 자산 방치…활용 방안 필요

작천보에서 시작된 답사는 청주시 신촌동 옥산교까지 이어졌다. 이날은 밤새내린 눈이 미호천에 설경을 만들어 주어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답사를 시작한 후에도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강바람이 매서워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는 것이 어려웠다.

작천보 주변에는 국궁장, 게이트볼장 등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고 미호천 물길에서 친수공간 사이 좌안에는 약 6백미터 길이의 어도(魚道)를 설치해 놓았다. 수량이 많아질 경우 물고기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겨울 가뭄으로 어도 위에 물은 없고 돌에 쌓인 눈이 마치 시루떡 같았다. 

겨울풍광에 빠져 친수공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작천보에 날아든 새들을 관찰하고 있는데 미호천지킴이 강전일씨가 “어, 저기 고라니가 있네”라고 소리쳤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어도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도 않고 강씨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셔터를 누르고 다시 그곳을 봤을 때는 이미 고라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카메라 사진 속에는 언제 고라니가 들어와 있었던 것인지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었다.

자연의 우연한 상황이 만들어준 기적을 눈으로 보게 된 일이었다. 작천보 주변 친수공간 때문에 사람의 출입이 많아 야생동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구간에도 간간히 고라니나 족제비 등의 배설물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야생동물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강한 생존능력을 보는 것 같았다.

작천보를 지나 신대동방향으로는 자전거 길 옆으로 산책로가 설치돼 있다. 산책길은 상당부분 엉망이었다. 모래와 비슷한 느낌의 재료가 제대로 굳지 않아 가루가 됐고 부분부분 땅위로 솟아 올라와 있어 자칫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었다. 급하게 공사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하자인데 이 재료들이 하천으로 유입돼 수질오염원이 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한 일이다.

옥산면 남촌리를 잇는 세월교를 건너 우안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안으로는 옥산면 소로리, 국사리, 가락리로 이어진다. 소로리에서 제방위로 올라와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곳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소로리 마을에는 볍씨출토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이정표가 없었다. 마을주민을 만나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마을주민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소로리 볍씨 출토지는 다음에 다시 답사하기로 하고 미호천유역수질개선사업 추진협의회가 진행한 ‘함께 소로천 가꾸기’사업 현장인 소로천을 둘러보았다.

소로천은 미호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으로 수질개선 사업 때문인지 주변에 축사가 많은 것에 비해 비교적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질개선사업 일환으로 수질정화식물인 창포 등을 식재한 것이다. 건강한 하천은 오염물질이 유입돼도 스스로 정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하천에서 서식하는 식물 중 특히 녹조를 일으키는 물속의 질소나 인을 제거하는 능력이 탁월한 식물을 수질정화식물이라고 하는데 창포가 대표적인 식물이다. 창포는 여러 해 살이 풀로 물가에 자라며 단옷날 창포를 넣어 끓인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풍습이 있다. 소로천에 이 창포를 심어 옛 전통을 재현해 보기도 하고 하천수질정화기능을 높이고 예쁜 꽃을 피워 마을 경관도 아름답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2015년 4월 창포식재 사업을 진행했다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어서 창포의 꽃은 볼 수 없었지만 한겨울 소로천에 가득 자란 미나리가 싱싱하고 깨끗해 보여 소하천 관리의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날 가보지 못한 소로리 볍씨 출토지는 지난 26일 진행됐다. 소로리 마을에서 시작한 답사는 볍씨 출토지가 마을 안 어디일 것이라고 짐작했던 예상을 깼다. 소로리와 접한 오창산업단지 안 모 기업의 주차장 옆 한가운데 있어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 기업의 총무과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경비실에 방문목적을 설명한 후에야 어렵게 볍씨출토 비석이 세워진 현장을 가볼 수 있었다.

현장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청원 소로리 볍씨’는 발굴 당시부터 세계학계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고 소로리 볍씨의 중요성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출토현장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장 현장으로 진입하는 입구부터 문제였다. 현장 주변 입구 어디에도 볍씨와 관련된 안내판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개인회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진입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개선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주차장 부지 일부를 현장으로 직접 진입하는 길로 확보한다면 개인기업 정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기본적인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남의 기업 한가운데 ‘청원 소로리 유적지’라는 표지석과 쇠 철장 울타리가 전부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관리 정책이다.

현재 청주시는 이 일대에 상징물을 세우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선 급한 것이 상징물 보다 현장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현장에 갔을 때 주민들이 볍씨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관 등이 먼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로리 볍씨는 충북대학교 발굴팀이 1998년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1만7천~1만3천년의 연대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발표하면서 학계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에는 ‘소로리볍씨와 생명문화도시 청주’를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발굴에 참여했던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유전자 분석 결과 옛 청주사람의 행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귀중한 고고학적 증거임을 설명한바 있다.

소로리 볍씨는 1만7천년 전에도 미호천 유역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쌀을 주식으로 생활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볍씨의 발굴은 인류의 농경생활을 연구할 수 있는 기본 자료는 물론이고 당시 미호천 유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문화를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만7천년이라는 과학적인 연대를 갖고 있는 귀중한 자산을 청주시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소로리에서 나와 다시 미호천 우안 둔치를 걸었다. 현재 자동차가 다니는 높은 제방 아래 둔치에는 오래전 제방 역할을 했던 돌길이 조성돼 있었다. 주변에 논 등 평야가 많아 농업용수로 이용하느라 사용했던 돌보도 눈에 띄었다. 자전거 도로가 없이 이 돌길과 같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면 물길의 생태·환경문제는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천과 어울리는 자연친화적인 적절한 길이다. 작천보에서 옥산교까지의 구간은 비교적 물길로서 갖춰야할 늪과, 모래톱, 여울 등이 골고루 발달해 있었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강전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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