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최근에 유행한 TV의 한 사극에서 부원군이 왕비의 중궁전 문밖에서 “마마 저 들어가옵니다!”라고 하면서 딸이 사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망연자실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것을 탓하는 것이 이상해져 버렸을 만큼 사극은 복장과 배경만 과거일 뿐 아예 현대의 멜로물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복원은 엄밀히 말해 역사왜곡이고 그렇게 살지 않은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을, 드라마 제작자들은 생각을 못하는가 봅니다. 아니면 문학의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자신이 지은 죄를 비켜가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그런 것을 탓할 만한 시대는 지나갔나 봅니다. 그런 것을 지적하면 무기력한 낡은 세대의 고집으로나 비치니 참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감동을 주는 작품은 될수록 당시 현실에 가깝게 만들려는 작가의 노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사극 드라마 제작자들은 한 번쯤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근대 학문이 벌써 100년 역사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못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조선이 망했지만, 그 당사자들은 대부분 1960년대까지 살아있었습니다. 그런 그들로부터 채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책속에 파묻혀서 보낸 세월이 학문의 부실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그런 부실은 사회 전체의 부실로 이어져 결국은 과거를 돌아볼 때 과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뜻하지 않게 거짓말쟁이로 만들게 됩니다. 그런 증거가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조선 왕실에서 마지막 궁녀 생활을 했던 한 여인이 늘그막에 털어놓는 이야기를 녹음하였다가 그것을 기초 자료로 하여 조선시대의 왕실에서 행해졌던 생활과 관습을 복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1980년대에는 서구에서도 미시사가 발달하여 그 영향이 우리나라까지 미쳐서 지금은 각 현장에서 사소한 풍속까지 들추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이미 세월이 한꺼풀 벗겨져서 돌아볼 수 없는 분야도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궁중 풍속이죠. 드라마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궁궐 생활이 나오는데, 그 생활을 재구성할 자료는 없으니, 오늘날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쓰는 용어를 버젓이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책이 이 책입니다. 지은이는 숙명여대에서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궁중의 낙선재에 드나들면서 궁녀들을 접하고 궁궐의 풍속을 연구하다가 이 책을 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극을 쓰는 사람들이 꼭 보아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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