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충북작가회의 회장

     
 

일요일 아침이다. 요일에 큰 구애받지 않고 사는데도 휴일이 좋다. 무언가에 얽매여 있다가 풀려난 느낌이다. 그런 일요일을 즐기며 아침밥도 거른 채 빈둥거리며 느긋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평화로움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셨다. 김치를 가져가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여든 하고도 세 해를 더 넘기셨다. 그런데도 온갖 먹을거리를 해놓고는 전화를 하신다. ‘겨우내 묵은 김치에 질렸을 테니 새로 담군 김치를 갖다 먹으라’하신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 아침을 깨는 어머니께 슬그머니 짜증이 일었다.

입이 초사였다. 얼마 전 우연히 식당에서 먹은 열무김치가 맛있더란 얘기를 했었다.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잊지 않고 기억을 했다가 자식을 먹이기 위해 김치를 담그신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담그신 김치나 반찬을 작은 손수레에 싣고 오시거나 택시를 타고 가져오셨다. 그런데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치셨는지, 얼마 전부터는 전화를 하신다. 다해놓은 김치를 가져다 먹는 것도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노심초사하셨다. 바빠서 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재촉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는 자식이 가져갈 때까지 혼자 애를 태우셨다.

조금 후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아버지셨다. 오지 말라고 하신다. 어머니가 김치를 옮기다 쏟아 먹지 못하게 되었단다. 순간, 안타까워하실 어머니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여든 넘은 노인이 좋은 열무를 사려고 육거리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싣고 집에 와 더듬거리며 다듬고, 양념을 하고, 아마도 이틀은 온 신경을 쏟으셨을 터였다. 그것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저며 들었다.

며칠 전, 두 노인만 계시는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호박죽을 끓인다며, 늙은 호박 껍데기를 벗기고 계셨다. 그런데 호박 껍데기와 살을 구분할 수 없으니, 일일이 손끝으로 만져가며 촉감으로 껍데기를 벗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해져 자식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아차리신다. 그나마 살림을 하시는 것도 평생을 해 오신 익숙한 살림살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드리려 했더니, 손 더럽힌다며 얼씬도 못하게 하였었다. 그 생각을 하며, 김치를 담그느라 애쓰셨을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니 화가 치밀었다.

한참 후 어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뚜껑을 설 닫은 줄 모르고 뚜껑을 들었다가 고스라니 거실 바닥에 쏟아진 것을 이제야 치우셨단다. 그러면서 다시 담가놓을 테니 다시 가져가란다. 눈도 잘 보이시지 않는 양반이 이제 그만 하시라고 화를 냈다.

“내가 해줄게 뭐있니. 조금이라도 힘 남아있을 때, 그런 거라도 해서 바쁜 너희들을 도와줘야지!” 코끝이 아렸다. 또다시 육거리시장을 다녀오시고, 손끝으로 열무를 다듬을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와 이제는 우리가 담가 가져다드려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도 벌써 수년전부터 끊되풀이 되어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 번도 김치를 담가 드린 적이 없다. 속상할 때만 한 번씩 버릇처럼 내뱉는 공염불일 뿐이다. 그러니 아직도 한참을 더 어머니 김치를 얻어먹을 속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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