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역사의 모습 간데없고 ‘문화재’만 덩그러니
생생한 역사의 모습 간데없고 ‘문화재’만 덩그러니
  • 김정애 기자
  • 승인 2016.03.21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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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정북동 토성의 가치는 주민과 함께 상생해야(청주시 정북동 토성~까치내)
▲ 사적 415호로 승격 지정된 정북동 토성. 사진에서 보이는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사진 아래)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甕城)의 초기 형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백제시대 축조…미호천 활용한 물류 저장·운반

문화재 관리 차원의 주민 이주로 황량한 모습

미호천·무심천 합수부 까치내 환경 오염 심각

친수공간 개발로 하천 둔치 훼손…생태계 파괴

오창읍 팔결교에서 열한 번 째 지천인 무심천 합수부로 가는 좌안을 따라가다 보면 백제시대에 건축된 토성이 있다. 청주시 정북동토성이다. 이날 답사는 전날 도착했던 합수부에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 토성을 둘러보고 까치내와 무심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미호천 전체 물줄기중 유역에 포함된 인구수를 생각하면 청주시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특히 무심천은 청주시를 관통하고 흐르기 때문에 미호천의 가장 중요한 지천인 셈이다. 청주시에서 무심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부 까치내(작천)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구간이다. 오창읍과 청주시를 아우르는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는 까치내가 미호천 전체의 물길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사를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쓰고 걸었다. 미호천 좌안은 오근장역과 정북동, 정하동으로 이어진다. 제방 밖 들녘은 대부분 논이다. 2010년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수리부엉이와 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 멧비둘기 등 수십 마리가 집단으로 떼죽음 당한 곳이기도 하다. 원인은 ‘유기인계 농약’이어서 쇠부엉이와 황조롱이 등 맹금류가 독극물에 오염된 멧비둘기를 먹고 2차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질 오염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거나 농약으로 인한 피해들이 발생하면서 미호천 유역의 야생동물들이 갈수록 개체수가 줄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치단체나 주민 등의 미호천 유역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합수부에 도착하기 직전 미호천 좌안 넓은 평야지대에 형성된 정북동토성(井北洞土城)은 백제시대에 건축된 평지형 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축조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근거지로 삼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궁예의 상당산성을 빼앗고 작강, 즉 까치내 옆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1996~1997년 처음 발굴에 참여한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는 정북동 토성이 후삼국의 항쟁기인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건축된 것이 아닌 가 추측한다. 평지에 축조된 방형 토성이라는 사실과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축공법은 성벽의 벽체부분은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워서 내부를 다지는 공법을 사용했고 기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은 채 벽체의 안팎에 다시 기둥을 세워 축조한 방식을 취했다. 서문터는 굴립 주에 의한 문이 있었다가 후대에 냇돌적심을 이용한 초석 기둥으로 대체됐다. 그 외에도 성안에서 주거유구, 기둥구덩 유구, 길 유구, 냇돌무더기 유구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으로 동남부 및 남문 바깥에서 해자가 확인됐다.

정북동 토성의 전체 모양은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 동서로 가로질러 농로가 있다. 발견당시 이 농로의 북쪽에는 20여 호의 민가가 살고 있었고, 남쪽은 경작지로 되어 있었다. 성벽은 단면이 사다리꼴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4곳 모서리 부분은 약간 높고 바깥으로 돌출되어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었던 듯하다.

각 4면의 성벽 중간쯤에는 문터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甕城)의 초기 형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배수는 서쪽이 약간 높은 지세에 따라 서문으로 물의 유입을 막고, 성안의 물을 동쪽으로 흘려 동문으로 배수시켰다. 성안에서 빠져나간 물은 성 밖을 둘러싼 해자(垓字)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벽의 높이는 3.5m~5.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 성벽의 밑 부분은 11.9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남벽 155m, 북벽 170m로 전체 675.5m이다.

현대 정북동 토성은 해자 등 일부분이 복원되었고 성 안에 살던 주민들도 이주한 상태며 1990년 12월 충청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됐다가 1999년 10월 사적 415호로 승격 지정됐다. 토성은 청주시가 관리하고 있으며 주말에 역사체험 학습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게 돼 있다.

정북동 토성이 문화재로서 가치 있는 이유는 현존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휴가 남긴 글처럼 물류 운반을 위한 저장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는 이유가 설득력 있는 것은 바로 미호천과 무심천의 합수부라는 물길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없던 옛 사람들이 물류운반을 위해 가장 용이하게 이용하던 것이 물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날 정북동 토성을 둘러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문화재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처음 발굴당시 20여 호의 주민들을 이주 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게 했다면 오히려 정북동 토성이 막연한 유물이 아닌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생생하게 그 모습을 유지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토성 안에서 주거의 흔적, 배수로 등이 발견된 것은 주민들 삶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가 됐다고 살던 주민들을 무조건 이주시킬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 문화재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면 지금의 정북동 토성이 그토록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을 터다. 생명이라는, 사람의 온가가 사라진 그저 무미건조한 옛 문화재일 뿐이다.

비가 내리는 날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정북동 토성을 한 바퀴 걸어보고 미호천과 무심천이 만나는 삼각주 까치내로 내려가 보았다. 미호천 물길 가운데 커다란 섬이 있어 멀리서 보아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미호천의 물길 중 까치내는 청주시 원평동 일대의 미호천을 일컫는다. 전설에 따르면 합수머리 일대에 흰 까치가 많이 날아오기 때문에 그 일대를 까치내라고 부른다. 17세기에 발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에서는 까치내를  작천(鵲川)이라 부르기도 했다. 작천(鵲川)의 작이 까치작(鵲)이므로 같은 의미인 셈이다.

예로부터 이 일대는 모래와 물이 많았고 주변 넓은 평야는 땅이 비옥해 곡창지대였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청주시에 고층건물이 건립될 때 한동안 이 일대에서 채취한 모래가 사용됐다. 식량과 좋은 모래, 물, 물고기 등 청주시 시민들에게 아주 요긴했던 곳이 바로 합수머리 까치내다.

지금의 까치내는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무심천 방면으로 고향의 강 사업을 진행하느라 하천의 둔치가 상당히 훼손돼 생태계가 무너졌으며 합수머리 모래와 물은 오염의 정도가 심각하다. 이 일대의 둔치를 주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질개선을 위한 방안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때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흰 까치나 흰뺨 검둥오리, 황오리 등 까치내에 날아오던 수많은 조류의 개체 수나 양이 줄고 있다는 것은 까치내가 갖고 있어야할 중요한 자산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강전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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