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석 한국교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라는 논의가 있다. 전통적 보수주자들이나, 아담 스미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많고, 함께 있음을 더 좋아한다. 또한, 보편성과 진리는 대체로 ‘존재하는’ 편이다.

반면에, 인간은 본연적으로 사회적이지 않다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토머스 홉스가 이러한 논의의 시발점이며, 니체나 프로이드로 갈수록 그 주장은 강해졌다. 그들이 대체로 주장하는 바는 ‘개별성’이다. 개인은 다르게 태어났다. 이러한 이론들이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도 없는 소통의 과정을 반복한다. 또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소속감, 안정감, 유대감을 위해 다양한 방법의 소통 수단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소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이어져 초기 전보, 전화를 거쳐 현재에는 인터넷, 스마트 폰까지 수없이 많은 경로의 창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의아한 것은 이러한 소통의 방식, 방법들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인간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롭고 고독한 존재로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이웃과의 거리감을 획득하면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은 그만큼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이웃이 아닌 보안업체들이 도둑을 지켜주고, 봉변을 당하더라도 이웃을 찾기 보다는 119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오늘날 불안과 공포는 이웃과 함께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웃해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얼마 전 봤던 TV 쇼에 대한 이야기인데 방송의 컨셉은 일반인 출연자가 출연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고민에 사회자들이 맞장구 쳐주며 고민에 점수를 방청객들의 호응도에 따라 얻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서 한 출연자의 고민 중에 ‘항상 섭섭하다고 말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간략히 얘기하자면 3, 4명이 어울리는 친구 그룹인데 한 친구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 같다고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 성향이 다른 것 같다고 하면서 불안해하고 섭섭해 한다는 것이 주내용 이였다. 그리고 내용 중에 요새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SNS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자신의 SNS에 ‘좋아요’라고 클릭을 안 해줘서 섭섭하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위의 예와 같이 앞서 말한 것처럼 소통의 방법과 방식이 다양화 되고 경로가 확대되도 또다른 형태의 고립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룹에서 누군가는 안정된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반대로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 타 그룹원들은 그런 성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심지어 수많은 시청자가 보고 있는 TV쇼에 나와 공개적으로 재판을 해버린다. 그들은 친구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친구 관계란 무엇인가? 평소 맺어지는 관계보다도 훨씬 더 소통이 잘돼 있는, 아니 소통 그 자체인 관계일 것이다. 물론 관계에는 갈등과 반목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간의 소통이 완벽하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소통의 과정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반복하면서 ‘소통’이라는 한 점을 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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