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북극의 매서운 찬바람은 아직도 끝일 줄 모르고 몰아친다. 추우면 추울수록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나의 꿈은 더욱 간절해진다. 봄이 문턱에 와 있음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지난지 오래 되었건만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은 내 마음의 봄을 기다리는 꿈을 산산이 부서지게 했다.

겨울 내내 혹한 속에 근교 농장은 어떻게 지냈을까. 그것이 궁금해 아내와 같이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농장을 찾아갔다. 먼지가 뽀얗게 묻은 하우스 안에 들어서니 훈훈한 흙내음이 풍겨 나왔다. 새봄을 기다리는 꽃모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각종 채소 모도 푸른 잎을 드러내고 무엇을 갈망하는 듯 싱싱한 희망의 싹이 내 가슴에도 일렁이는 듯 했다.

팬지, 데이지, 상추, 토마토 등 수많은 묘가 모두 저마다 지닌 특성과 꿈이 있지 아니한가. 모를 사다 심는 주인을 잘 만나 타고난 소질을 마음껏 발휘할 운명의 순간이 오기를 꿈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모종(苗種)들은 지금 졸업식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들과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 고등학교를 가고 어느 대학을 선택해 청운의 꿈을 꾸는 욕망이 하우스 속에서 꿈을 꾸는 희망을 느껴본다.

학교 교실이라는 온실속에서 선생님의 따뜻한 정성과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라온 나약한 존재들. 이제 졸업이라는 명예(名譽)를 벗고, 더 높은 곳으로 희망이 살아 숨 쉬는 더 큰 광장으로 달려 나갈 꿈을 꾸고 있지 않는가. 험한 세상 몰아치는 광풍에 순박한 어린마음, 다칠세라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한다.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절화(折花)재배농장에도 들렸다. 따뜻한 하우스 속에 아름답게 피어난 ‘후리지아, 스톡크. 거베라. 등 많은 꽃모들을 보면서 혹한 속에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자니 기름 값이 싸다지만 꽃송이를 꺾어 묶는 주인에게 “날이 추워 힘드시지요” 하고 위로의 말부터 던졌다. “요즈음은 졸업, 입학시즌이라 꽃이 잘 팔리겠지만 어떻게 수지를 맞출지 걱정이 되네요” 나는 그 농민의 어려운 입장을 생각하면서 새봄을 맞아 꽃망울처럼 희망과 꿈은 잃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논둑 밭둑 피는 제비꽃도 꿈을 꾼다고 한다. 꽃피고 새우는 봄의 향연(饗宴)에 훈훈한 봄바람 타고 날아드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은 느낌이다.

봄이 깊어 라일락 향이 창가에 기웃거리는 날이 오면 뻐꾹새 울어대는 내 고향의 봄이 그리워진다. 진달래 꽃 따먹고 꽃물 가득 들어 산속을 헤매던 유년시절, 버들피리 꺾어 불고 물장구치며 놀던 때가 그립기만 했다. 고향의 봄을 생각하면 동구 밖에 오디 따먹고 손과 입, 옷까지 염색이 되어 엄마의 꾸중을 호되게 듣던 옛이야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란다. 봄이 오면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모종 심는 농부의 바쁜 발 거름에도 풍년의 꿈을 실어보는 새 희망이 솟아난다. 나물 캐는 아낙들의 가슴에, 씨 뿌리는 농부의 손길에, 졸업 후 교문을 나서는 청소년의 마음에, 봄은 희망의 꿈을 실고 온다. 그렇기에 봄은 아름다운 꿈을 잉태(孕胎) 하는 계절이던가. 새봄에 새 일꾼도 뽑는 날이 다가오니 벌서부터 야단이다.

탐욕과 아집으로 우리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비열한(卑劣漢)! 반드시 모두 몰아내고 새 일꾼을 뽑아 백척간두의 이 땅의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을 함께 찾아보자.

춘몽(春夢)! 인생무상인가. 윤회(輪廻)사상일까. 만고강산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철따라 오가는 봄이건만 내 인생의 봄은 언제 다시 올까. 제 몸을 녹여 꽃눈 잎눈 모두 움트게 한 고목에도, 기적 같은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할 지라도, 봄날의 꿈을 싣고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에 부초(浮草)같은 내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