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우 청주시서원구 농축산경제과장

잔뜩 낀 구름 사이를 헤집고 제주에 내려앉는다. 염려한 대로 비행기 차창 밖으로 비가 쏟아진다. 우리야 괜찮지만 어머님이 걱정이다. 우산은 몇 개 챙겨왔지만 바람까지 거세다. 우선 할머니 전담은 손자니까 알아서 잘 모시리라. 큰 우산을 아들에게 주고 어머니와 함께 천천히 공항을 나와 랜터카를 빌려 타고 출발하는데, 비로인하여 당초 계획한 대로 갈 수 없다고 푸념을 하는 아들에게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다, 추억으로 생각하면 즐거운 법이다’. ‘짜증낸다고 날씨가 개는 것도 아니니 즐겁게 다니자’ 라는 성인 같은 말에 모두 공감 한다.

우선 비가와도 볼 수 있는 여미지 식물원을 택하여 열대식물 등 평소 볼 수 없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어머님께서는 일일이 표찰을 읽어보시며 즐거워하신다.

비가 뜸한 것 같아 주변에 있는 주상절리대를 향했는데 바람까지 세차다. 방향을 돌리려는데 어머님께서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구경하자고 하여, 절벽 아래로 신이 빚어놓은 작품인양, 장작을 쌓아 놓은 듯한 바위기둥을 향하여 억겁의 세월을 향해 부딪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무게를 갸름해 본다.

날씨관계로 당초 계획했던 스케줄을 전부 교체하여 우선 할머니께서 다니기 편리한곳으로 급하게 변경하느라 딸이 스마트폰을 바쁘게 작동한다. 폭포 중에는 천지연폭포가 제일 다니기 편하다고 하여 그리로 방향을 잡았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폭포수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구부정한 등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천근같은 무게로, 구부러진 등위에 세월의 무게를 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가 더 심해져 실내 관광지를 찾던 중 평소에 안가는 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볼 것도 많고 의미 있는 공원 같다.

전쟁 등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제일 많은 피해를 입는 힘없는 양민들의 삶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짠하다. 어머님도 오늘 다닌 곳 중 제일 볼게 많다고 설명서를 일일이 다 읽어보시고 맨 뒤에 나오셨다.

이튼 날도 날이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산굼부리로 향했다. 산굼부리는 13만년 전에 화산의 분출에 의해 생겼다는 ‘산에 생긴 구멍’이란 제주도 방언이란다. 갈대숲을 지나 정상에 올라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니 화산이 폭발할 당시의 모습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상상을 해본다. 성읍민속마을에 들려 인분을 먹여 키우던 흑돼지 위에 지붕 없는 화장실은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쉽게 도망치기 위한 방편이라니 힘없는 우리 조상들의 힘든 삶이 애처롭다.

돌하루방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겨본다. 양 옆의 손자, 손녀 가운데 어머님이 손자들 어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아진 모습이 렌즈를 통하여 비쳐지는 모습이 애처롭다. 비는 계속되어 선녀와 나무꾼으로 향했다.

옛날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에서 가정통신문, 교련복, 양은 도시락 등 불과 얼마 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인데 벌써 까마득하다. 일찍 서둘러 숙소로 향했는데 날씨 탓에 벌써 어둠이 몰려온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때서 햇살이 환하다. 어머님이 ‘아이쿠! 집에 갈 때가 되니까 해가 보이네’ 하신다. 마지막 날은 비자림으로 향했다. 비자림은 500∼800년된 비자나무가 2천800그루가 모여 있는 곳으로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병도 다 나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머님도 어렵다하지 않으시고 숲속 산책길을 한 바퀴 완주하셨다. 공항으로 가는 중에 해변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가슴에 담고 김녕해수욕장에 있는 식당에 들려 제주특산 회국수로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해결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제주의 하늘로 솟구쳐 구름 아래로 살아져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남겨놓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솜털 같은 구름 위를 스친다. 어머님이 건강하여 다시 또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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