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광 섭 <성동교회 목사> jang0691@chol.com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대단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다만 이 나라가 과거에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지도자들의 철학과 비전이 있었다.

오늘날은 ‘정직과 성실’이라든지, ‘충성’이라든지 ‘훌륭한 인격’이라든지, ‘살신성인하는 희생의 정신’이라든지 하는 기본적인 자질(資質)을 갖춘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현대화, 민주화 이전에는 권위주의, 군주시대의 엄청난 백성들의 억압시대가 있을 때에도 지도자들은 ‘민심은 천심’이라고 해서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에 대해 깊은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정치를 해 나갔다.

그리고 청렴결백한 지도자를 으뜸으로 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나라에 ‘희생적인 헌신’을 귀하게 여겼다. 몇 년 전부터인가 ‘청백리 상(償)’제도가 생겨나서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포상하는 제도가 있다. 부정부패로 나라가 힘들어도 그런 사람을 찾아 포상한다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유럽처럼 맑고 깨끗하게 일하는 나라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당연히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공직자들이 정직하게 살고 깨끗하게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썩었으면 깨끗하게 일하는 공직자라고 상을 준다는 말인가? 제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에 내놓기는 부끄럽다는 말이다.

신문이나 방송보도를 통해서 늘 서민들의 듣기에는 상상조차 못할 어마어마한 돈이 불법 정치 자금으로, 또는 사적인 부정으로 취해졌다는 보도는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 알지 못하면 인생을 보람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없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신과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 최고의 목적일 것이다.

불교의 자비의 사상이나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과 유교의 효 사상(종요로 보기는 어렵지만)이라는 가치관들은 인류의 행복과 신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삶인가 하는 가치관이 정립되고, 미래의 비전은 무엇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은지는 오래 됐고, 모든 국민이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사는데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가난한 나라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나라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 왔던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독일 등)은 이미 그러한 꿈을 이뤘다.

우리나라의 비전은 무엇인가?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오랜 동안 노력해 왔지만, 북한은 최빈국으로 전락해 버리고, 역사에 없는 일인 독재 체제의 공산주의로 생지옥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 체제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꼴은 봐줄 수가 없다.

이번에 북한의 룡천에 대 폭발사고가 있은 후에 남쪽에서 구호품을 보내고, 병원 선을 파견한다고 해도 해상으로 수송해 달라고 하면서 쉬운 육로로 갈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 현재로 봐서 북한은 개방과 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나라가 회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본다. 기정일 일인체제유지를 위해서 계속 닫아만 놓는다면 미래는 없고 희망도 없다.

지도자 하나의 욕심을 위해서 수천만이 고통을 당하고 수백만이 굶어 죽는대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제발 올바른 철학과 비전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래의 세계는 바로 지도자들에 의해서 중대한 결과가 이뤄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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