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아침에 일어나 마루 미닫이문을 여니 찬 기운이 섬뜩하다. 소한 추위를 하나보다. 그런데 봉당을 보니 간밤에 던져놓은 피자 포장지가 씻어놓은 듯 깨끗하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추운 날씨만큼이나 가슴이 더 저리다. 지난밤에 아람이가 죽어라 짖어대더니 그 사이 고양이가 다녀 갔는가보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있다 마당에 나갔다 들어오며 아내가 말했다.

“고양이들, 겨울나기 힘드네!”

어제 저녁을 먹고 남은 음식을 고양이 밥그릇에 부어놓았는데 싹 쓸어먹었단다. 겨울이 되니 사람이고 짐승이고 풀이고 모두가 힘들다. 특히나 보살펴주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만삭이 된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걸금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어슬렁거리기에 빈 그릇을 하나 처마 끝에 갖다 놓았었다.

날씨도 춥고 먹을거리가 귀해지는 겨울에 새끼까지 가졌으니 고생이 작심할 것 같았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판에 무슨 고양이타령이냐고 포스라운 소리한다고 핀잔을 얻어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런 마음이 더해만 간다. 그런 모습도 싫고, 그런 모습을 보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싫다. 더구나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을 넘어 화까지 난다. 태어나게 한 그 무엇인가에 대한, 고생하는 그 존재에 대한 분노가 인다. 그래서 이따금씩 이런 말을 내뱉고는 했다.

“난, 이번에 가면 다신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거야!”

그러면 하나같이 “그게 네 마음대로 되냐?”며 비웃듯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 고생하는 것이 싫어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껏 살아오며 갈등을 느끼지 않은 날이 몇 날이나 있었을까. 이제껏 살아오면 편안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도 갈등 한 점 없이 편안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또 그런 사람을 보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미안하다. 그래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쪽 구석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만물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조금은 덜 춥지 않을까. 그리고 버텨내는 겨울이 조금은 덜 힘겹지 않을까. 말라가는 화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 배가 고파 사방을 헤매는 고양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아침서부터 겨울나기가 힘들어 보이는 고양이 때문에 괜스레 심란하다. 올해는 세상 사람들 모든 이들이 몸 고생, 마음고생이 덜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하더라도 마음을 써주는 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금이 갈는지도 모르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