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대단한 권력자(權力者)의 아들이 문관시험(文官試驗)을 치르게 되었다. 아버지가 테스트해 보니 상당한 실력이 있어 합격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합격자의 명단에는 아들의 이름이 끼어 있지 않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장관한테 들이닥쳤다. 장관은 황급히 답안지를 조사해 보았지만 글자가 희미해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불합격은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는 어깨를 푹 떨어뜨리고 집에 돌아오자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호통을 쳤다.

“너 이놈, 어째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글자를 썼느냐?” 그러자 아들은 대답했다. “시험장에서는 먹을 갈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물만 묻혀 글자를 쓴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웃음의 이야기지만 의뢰심의 본질을 파해 친 걸작이다.

이 권력자의 아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나약하게만 자란 사람들은 기력(氣力), 의지력, 실행력이 없으며 뜻밖의 사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청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A공업의 A사장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불황이 닥치자 급진적으로 내리막으로 도산해 버렸다. 스스로 장해와 맞부딪쳐 이겨 내려는 기백과 실행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장 밑에는 그저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밖에 없다. 직언(直言)하는 사람은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때그때를 얼버무리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되면 책임은 딴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피해버리는 것이다.

A사장이 하는 방식도 이러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가 사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꽤 실력 있는 경제인으로서 얼굴도 넓었으므로 그 아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도와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결국 그는 가을의 낙엽처럼 떨어져갔고 지금 그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친구는 없다. 물론 2대째라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버지보다 월등한 실업가, 정치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예외없이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단련 받아 왔고 그래서 자기의 실력을 자각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있다.

어찌 2대만의 문제이겠는가! 누구를 막론하고 타인에 의존하는 습관이 베이면 기력도 의지력도 위축되고 만다. 의뢰심만큼 자기를 파괴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험난한 길이라도 직접 자기 발로 걷는 습관과 의지력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가치와 자기 발전과 자기 성공의 길인 것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였던가. 세상은 준비된 자의 몫이다. 뜻 있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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