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문 수  <충청대 영어통역과 교수> hms10@ok.ac.kr

요즈음 개인 날에 날벼락이 잦게 떨어지고 있다. 옛날의 벼락과 오늘날의 벼락에는 차이가 있다. 옛날의 벼락은 자연현상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지만 오늘의 벼락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라 사람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불러드리는 재난이다.

소박한 시대에 벼락은 분명 두렵고 섬뜩한 현상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 오늘날은 벼락에 대한 그러한 두려움은 줄어들었으나 섬뜩하고 불행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인식은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 사고 관리 허점

사고란 속성상 우발성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해 생명의 신비조차 벗겨지는 시대에 벼락과도 같은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은 문명사회의 아이러니이자 안전의식이나 안전방지에 대한 허점이나 문제점이 있다고 봐도 지나친 시각은 아니다.

지난 번 폭설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눈을 치우지 않고 달리던 트럭이 얼음 덩어리를 떨어뜨려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바로 하루 뒤에는 반대편의 중앙분리대를 넘어 날아든 타이어가 승용차를 덮쳐 다시 두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원시적인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사고가 방지될 수 있는 부주의나 실수로 인한 사고라는 점에서 불행은 더욱 크고 심각하다. 아무런 잘못이나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한 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슬픔이나 고통을 넘어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으로 가득할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불행은 그들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모두가 져야할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성장이라는 햇살아래 재난의 그늘이 커져가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성장도 중요하지만 희생을 볼모로 한 성장은 의미가 없고 무의미함을 넘어 사회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안전망을 자랑하는 미국이 9·11 테러의 기습에 무력했고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나 지진으로 구 소련이나 일본이 고통을 겪은 경우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구참사와 함께 연례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홍수나 산불과 산업 재해 등과 같은 많은 재난의 취약점을 안고 있는 우리사회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방지책 수립이 너무 허술하기만 하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고가 시민의 안전의식의 부족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관리상의 허점이나 문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방지책과 관심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돌부리에 한번 넘어지는 것은 실수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이 빈발하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구제하기 어려운 사회의 중대한 문제상황으로 밖에 달리 받아드리기 어렵다. 부천 백화점이나 군의 헬기 사고만이 아니라 더 이상 이어지는 불행한 재난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나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다.

국회의원 신뢰 모습 필요

힘겨웠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의 기쁨을 누리며 새로이 등원하는 국회의원들은 그 동안 소홀히 했던 민생의 문제해결에도 적극성을 보이며 사회의 불신과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심기일전해야 할 것이다.

되풀이되는 비참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 행정을 맡은 책임자나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쏟은 열정 못지 않게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열정과 새로운 신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복지는 소득수준을 높이는 계수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민이 부딪치며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이나 고통지수를 낮추는 일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선진사회란 개인 날에 날벼락과 같은 예기치 않은 불행이나 위험한 사고가 적은 사회이며 그러한 불행을 막는 일이 실질적인 복지정책의 일환이자 지도자들이 사회를 위해서 해야할 중요한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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