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아까운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두 가지 다인지도 모르겠다. 또 첩첩이 쌓이고 말았다. 올해도 몇 번이나 이런 지경을 당했었다. 몇 날을 치우고 치우다 하도 지겨워 다시는 이렇게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버리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또 쌓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이 틀림없다.

더 최악인 것은 쌓아두었으면 눈에 거슬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 한 번 지저분한 것이 보이면 눈에서 그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며 두고 보기만 했다. 그것을 손댔다가는 고생길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땡비 집은 무조건 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참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찾으려고 창고를 열었다가 구석구석 쌓인 온갖 잡동사니가 눈에 들어왔다. 화근인지 알면서 결국 그것을 건드리고 말았다.

올해는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것이라더니, 요 며칠은 몹시 춥다. 콧속이 얼기라도 할 듯 날씨가 칼칼하다. ‘일도 안하는 놈이 명절날 아침 낫 가지고 어리댄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시집가는 날 등창 난 새색시’, 꼬라지다. 따뜻했던 허구한 날 다 보내고 이 추운 날, 청승을 떨며 치우겠다고 번잡을 피우니 아내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작을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는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아침이 막 지났으니 시간도 진진하다.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한다. 혹여 쓸 만한 물건이라도 고물과 함께 휩쓸려 버려질까봐 일일이 책장도 펼쳐보고 봉투 속도 살펴본다. 그리고는 네 귀를 반듯하게 맞춰 차곡차곡 모아 노끈으로 묶었다.

아내는 기왕에 버릴 쓰레기에 뭐 그리 정성을 쏟느냐며 노끈 값이 아깝다고 지청구다. 곧 버려질 고물이지만 그렇게 묶어 가지런하게 쌓아놓으니 내 마음속이 깔끔해진다. 그게 좋아 더더욱 반듯반듯하게 네 귀를 맞춘다. 묶고 남아 너불대는 노끈 자락도 가위를 가져다 끝자락을 맞춰 깔끔하게 자른다. 스스로 대견하고 기분이 최고다.

하지만 어쩌랴. 초심이라던가? 그 마음이 오래 가지를 않으니. 점심도 되지 않아 점점 꾀가 나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모서리는 들쑥날쑥해지고, 노끈 길이도 제각각이다. 깡총하게 쌓여있던 이삿짐이 본래의 고물 더미로 되돌아갔다. 내 마음도 창고 문을 열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고물은 고물일 뿐이라고. 애써 그게 내 본래의 초심이었다고 자위를 한다. 나는 고물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버린 것이었다. 고물을 버리는 것보다 마음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몸을 편하게 하려고 마음을 버렸다. 쌓이는 것이 어디 고물뿐이냐며 또 핑계를 댔다.

그리고는 올해는 다 갔으니 새해부터는 잘해보자고 이런 결심을 했다. 똑같은 핑계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해에는 몸도 마음도 절대로 아무것도 쌓아두지 말아야겠다.

‘새해에는 즉시 버려야지!’ 하지만 지킬 수 있을까? 안 되면, 그 때가서 또 바꾸지. 결심도 고물처럼 버려지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마음먹은 대로 결심이 모두 지켜졌다면 사전에 그 낱말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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