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금년은 가을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한참 만에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서인지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맞이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빠르게 간다더니 한 장의 달력이 남았다. 을미년 연초에 양(羊) 온순함과 상서로움(祥)을 강조하며 착하고 의로운 해를 보내 달라고, 행운과 평안이 가득하고 하는 일이 계획대로 잘되기를 기원했는데……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미래를 원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꿈은 여기 현재의 일에서 가져야 할 것이니 이루고자 하는 뜻에 확고부동해 흔들림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노력하자”라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달려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바쁘게 살아온 가운데 계획한 일의 성과를 많이 이루어 내지 못하였지만 하루하루 다사다난하게 무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움직여 보면서 한 해를 달려온 내 자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나의 주장을 말하면서 말을 많이 할 줄만 알았지 남의 말을 들으면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해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듯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 목표달성도 혼자의 힘보다 서로의 공통의 목표를 만들어 갈 때는 지루하지 않고 먼 길을 계속 갈수 있다고…….

다소 진부하게 들릴 줄 알지만 ‘성(聖)’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음악(音樂)의 최고의 경지는 악성(樂聖)이요 시(詩)의 최고의 경지는 시성(詩聖)이며 서(書)의 최고의 경지는 서성(書聖)이고 바둑의 최고의 경지는 기성(棋聖)이다.

‘성(聖)’자를 보면 ‘귀(耳)’와 ‘입(口), ‘왕(王)’자의 3요소가 합해져 있는 뜻이 깊은 글자이다. ‘성인(聖人)’은 먼저 남 얘기와 역사의 소리와 진리의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듣고 난 후에 입을 열어 말을 한다. 듣고 말을 하는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耳’자, ‘口’자, ‘王’자의 세 글자 요소로 구성되지 않았나 싶다.

귀가 있다고 들리는 것은 아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갖고 있어야 들린다. 문맹이 글을 못 보고, 색맹이 빛깔을 분간하지 못하듯, 머리가 모자라면 깊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공자는 나이 육십세가 돼 비로소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으며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를 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걸 관용하는 경지다. 말을 배우는 데는 두해를 보내지만 경청을 배우는데는 육십 해를 보낸다고 하니 남의 이야기를 바로 듣고 깊이 이해하려면 많은 지혜와 체험과 사색이 필요하다.

을미년의 한해를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 멈추지 않고 달려온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으리라 본다. 지금부터라도 나름대로의 원대한 목표를 세워 서두르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 말고 자연 속의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하루하루를 경청하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시간 속에서 멈춰 있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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