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우리 동네 만인하이퍼가 없어졌다. 수십년 동안 골목 입구를 지키며 단 한 번의 불황도 없이 잘 유지되던 만인하이퍼였다. 만인하이퍼는 몇 년 전 나의 콩트에도 소개된 적 있는 우리 동네 구멍가게였다. 그리고 만인하이퍼 주인은 여든도 넘은 할머니다.

만인하이퍼는 이름만 거창하지 물건을 파는 슈퍼도 아니고 구멍가게도 아니었다. 만인하이퍼는 가게라고 하기에도 과분한 우리 동네 골목 입구에 있는 손바닥만 한 탁주집이었다. 하이퍼 안에는 네 귀가 닳아버린 앉은뱅이 탁자 하나와 주종도 막걸리뿐이다. 안주도 할머니가 난로 위 들통에 한가득 끓여놓은 김칫국 한 사발을 퍼주면 그게 전부다. 이삼천원이면 하루 종일 얼간하게 시간을 죽일 수 있으니 우리 동네 노는 형님들에게는 만인하이퍼가 최고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만인하이퍼에 드나드는 손님은 매일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 년이고 이년이고 다른 집은 갈 줄도 모르고 죽기 전까지는 만인하이퍼로 출근한다. 그러니 경기가 좋지 않다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는 소리를 해대도 만인하이퍼는 끄떡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도 만인하이퍼가 문을 닫지 않은 것은 거래처를 바꾸지 않고 줄창 찾아주는 꿀 단골들 덕분이었다.

그랬던 만인하이퍼가 얼마 전부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며 공사에 들어갔다. 아무리 실내디자인이 필요 없는 집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시대 조류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일까? 너절하던 가게 안팎을 모두 뜯어내며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졌다. 공사는 두 달이 넘게 계속되었다. 공사가 계속되는 동안 주인 할머니도 매일 꼴방쥐처럼 드나들던 동네 노는 형님들도 골목에서 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사가 끝나면 모두들 나타나 다시 골목 안이 시끌벅적해지겠지 생각했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났다. 예전과 달리 만인하이퍼의 외관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칙칙하고 지저분하던 예전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골목 모습도 깨끗하고 환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고, 형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고, 그러던 어느 날 밤중이었다.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 입구 가로등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할머니 아들을 만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궁금했던 할머니 근황을 물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단다. 나는 가게가 하도 비좁아 확장 공사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사를 시작했던 두어 달 전 할머니가 가게 안에서 낙상해 엉치뼈를 다치셨단다. 곧바로 수술을 했지만 연로한 노인이라 경과도 좋지 않고 후유증이 생겨 그동안 재수술을 또 했단다. 차도가 없단다. 다행히 호전이 되어 퇴원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장사를 계속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평생 해오던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만인하이퍼를 생활하기 편한 살림집으로 개조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퇴원은 어려울 것 같다며 아들 목소리에 근심이 잔뜩 서려있었다.

아들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가슴 한쪽에서 ‘쇄-’ 하고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리고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며 할머니를 원망하고 동네 형님들을 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라진 것은 수십 년 동안 골목을 지키며 휴게실 역할을 했던 만인하이퍼가 아니라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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