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어떤 고을에 이르렀을 때에 어느 도공의 이야기 이다. 그의 도자기 굽는 솜씨가 뛰어나서 그의 도자기를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 도공의 솜씨는 사람의 솜씨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가마터에는 손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궁금하여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 도공의 그림 솜씨는 천하제일이라고 하는데 왜 도자기를 사러오는 손님들이 없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지팡이를 손에 쥐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노인께서 한마디를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교만 때문에 그렇지요.” 나그네가 깜짝 놀라며 다시 말을 하였다. “교만은 사람의 일이고 도자기는 물건의 일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늘만 바라보고 계시던 노인께서는 한참을 생각을 하시더니 “그의 그림 솜씨야 천하에서 따를 자가 없을 만큼 뛰어나오. 하지만 그의 도자기는 쓸모가 없다오.”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묻고 싶었으나 노인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말을 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접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노인은 다시 입을 열고 말씀을 계속 하였다. “도공의 예술 솜씨는 천하가 부러워할만 하였기에 처음에 가마를 구울 때만 하여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며 천하의 엽전이 아마도 가마터에 모두 모일 거라고 시샘 어린 말조차 떠돌았지 않았겠소. 그러나 그에게는 오래 갈 수가 없는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오. 사람은 유순하고 좋은데 그의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고정이 되어 그 집에서 나오는 도자기들은 항상 그 모양과 형태와 크기가 같았던 것이오. 세상은 변화를 하는 것이고 사람은 그 변화를 따르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도 변화를 갈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소. 하지만 그는 세상의 이치 가운데에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信念)을 따랐기 때문에 그 또한 순리에서 벗어났음이 아니겠소.”

“아니 도대체 신념을 따르는 것이 무엇 때문에 나쁘단 말입니까?” 그러자 노인께서 다시 말씀을 하셨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겠소. 겸손과 비굴의 차이가 어렵고 용기와 만용의 차이가 어렵고 교태와 애교의 차이가 어려운 것처럼 교만과 신념의 차이도 어려운 것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말장난을 즐기기 좋아하는 탓으로 단어 하나를 두고도 수 천 년에 걸쳐서 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겠소. 신념이 강하고 자신의 의지력이 대단한 사람이요. 다만 세상 사람들이 그 신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신념이 넘쳤으니 교만이 되는 것이요 신념에는 사람들이 따르겠으나 교만에는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 것도 이치라 하오. 말로써 교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교만이요, 행동으로써 교만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교만이요, 지식으로써 교만한 길을 걷는 것도 교만이요, 도공은 자신의 예술로써 교만한 길을 걸었기에 신념이 강한 것도 사실이고 교만한 것도 사실이요. 그래서 세상의 물건을 살필 때에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아야 하는 것이고 사람의 몸도 수많은 물(物)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사람을 살필 때에도 마찬가지가 되오. 자신의 마음속에서 신념의 원리를 알고 교만의 원리를 알고 타협의 원리를 모두 알았다면 어느 누구인들 신념을 구태여 교만으로 보오리까? 자신의 교만이 신념을 보지 못하였고 자신의 신념이 교만과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에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요.” 노인께서는 그렇게 뒷모습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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