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황새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 쇠머리 마을(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쇠머리 마을에 있는 물푸레나무. 우리 텃새인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가 한국전쟁 무렵까지 둥지를 틀고 살던 나무다. 수령이 4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물푸레나무는 새마을 운동 등으로 생장주변 환경이 나빠져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보호수 지정이 시급하다.

한국전쟁이후 자취 감춘 삼호리 황새

번식지로 사용되던 물푸레나무도 위태

오염된 미호천 생태계 복원 우선돼야

 

충북 음성군 대소면 태생리 태생교, 오산리 오산교를 거쳐 흐르는 미호천은 태인말과 귀비안들, 재키시들, 장살미 등 넓은 들판을 아우르며 대소면 삼호리 삼호교에서 삼성면 대사리 양덕저수지부터 흘러온 성산천과 합류한다. 이 성산천은 마이산과 황색골 사이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로 역시 마이산을 발원지로 볼 수 있으며 양덕저수지에 모였다 대소면 오류리를 거처 삼호리에서 미호천과 합류하는 것이다.

8월 3일, 한 여름의 중심에서 찌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시작된 답사는 미호천과 가까워 오래전 황새가 둥지를 틀고 살았던 마을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쇠머리 마을. 삼호리에서 황새마을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삼호리 마을이 여러 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진데다 황새마을이었던 삼호 1리 마을(쇠머리) 입구에 우리나라 텃새인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가 둥지를 틀고 마지막까지 서식했던 곳이라는 이정표를 볼 수 없었다. 특히 이곳에는 미호천에서는 먹잇감을 찾고 마을에서는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으며 여러 마리가 살았다는 물푸레나무가 아직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먼저 마을 회관을 찾았다. 마침 마을 어르신 몇 분을 만났고 덕분에 마을 회관 옆으로 옮겨졌다는 황새번식지 표지석을 볼 수 있었다. 표지석에는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학번식지(陰城鶴繁殖地)’라고 새겨져 있었다. 현재 황새는 1968년 이래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됐다. 표지석에 적힌 120호라는 것은 비석이 일제강점기시절 세워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삼호리에는 당초 황새번식지 표지석이 두개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마을 입구 산기슭에 세워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황새가 둥지를 틀고 살았던 물푸레나무 아래(강성옥씨 댁)다. 한국전쟁 이후 삼호리에 황새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1973년 문화재청은 삼호리 마을을 천연기념물 보호지 지정에서 해제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일환으로 마을길이 정비되면서 물푸레나무가 있는 강성옥씨 댁 마당이 길로 편입돼 나무 아래 세워졌던 표지석도 뽑혀 마을 입구 산기슭에 있던 표지석과 함께 방치됐다.

이후 2006년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 의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던 비석이 발견됐고 황새복원센터는 마을입구에 있던 비석은 원래의 자리인 마을 입구 위쪽 산기슭으로 옮겨 놓았고 한 개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마을 회관 옆으로 옮겨졌다. 마을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두 개의 비석을 보기가 힘들었다. 마을회관에 있는 비석조차 마당 한가운데가 아닌, 처마 밑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시절 천연기념물 황새번식지로 지정된 곳은 남한에 모두 3곳이다. 비석이 남아 있는 곳은 충남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와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뿐이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도 비석이 있었으나 개발과정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

마을 주민 허성구(80)씨는 실제 황새가 둥지를 틀고 살았던 물푸레나무가 있는 집에서 열다섯 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허씨 어른의 도움으로 물푸레나무가 있는 집을 가 볼 수 있었다.

물푸레나무는 길가에 바로 접해 길 위를 덮었고 길 위에 드리워진 나무줄기들은 불규칙적으로 꺾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에 닿는 나무줄기를 마구잡이로 훼손한 것이다. 나무 본 기둥은 시멘트 담장 안에 있었다. 집 뒤란에 있는 나무는 안타깝게도 시멘트 담장과 거의 밀착돼 있었으며 속은 텅 비었지만 뿌리와 껍질은 견고하게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허씨 어른은 “어린 시절에 이 집안 아래채에서 살았지. 그때는 해마다 황새가 수 십 마리 씩 날아오곤 했는데 전쟁 때 군인들이 총 들고 들어온 이후부터 황새가 사라졌어.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니 총 든 군인들이 황새를 보고 가만 놔뒀겠나. 그 뒤 황새가 오지 않았어. 황새 집이었던 이 나무가 400년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지”라고 말했다. 삼호리 마을 이장인 강성태씨 역시 “어린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황새와 포수 이야기가 우리 마을 이야기 인줄 알고 자랐다”고 했다.

현재 물푸레나무는 집안에 있기 때문에 집 주인이 보호수 지정을 반대할 경우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 해도 보호수 지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수령조사 등이 진행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어렵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숲 해설가이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씨는 “황새가 나무에 서식할 경우 보통의 나무들은 새똥으로 인한 독성 때문에 고사할 수 있다. 물푸레나무가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 황새의 번식지로서 오랫동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았던 황새가 스스로 마련한 집이 물푸레나무였다는 것은 황새도 물푸레나무의 강한 성질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성옥씨 댁의 물푸레나무도 황새와 함께 개발논리에 밀려 오래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황새가 살던 시절에는 나무 아래 넓은 평상이 있어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을 내고 하수도 공사를 하느라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줄고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게 됐다. 황새 둥지도,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사라졌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푸른 잎을 틔우곤 한다.

전숙자씨는 “물푸레나무가 타고난 강한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제대로 보호를 해주지 않을 경우 언제 죽을지 모른다. 현재 나무가 자라고 있는 주변 환경이 너무나 위태롭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황새는 한국 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에 의해 복원돼 올해 본격적으로 충남 예산군 광시면 황새공원에 방사됐다. 1996년 처음 러시아로부터 황새 새끼 한쌍을 들여와 20여년 간 황새 복원작업을 진행한 연구원은 당초 청정지역인 옛 청원군 미원면에 황새번식지를 만들려 했으나 문화재청 지원금 외에 청원군 지방비에서 분담하는 15%를 청원군이 외면하는 바람에 좌초된바 있다. 이 사업이 결국 예산군으로 넘어간 것이다.

황새 복원의 최종 목표는 황새가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연구원은 예산황새공원에서 사육 중인 8마리를 처음으로 자연에 되돌려 보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70여마리의 황새를 방사할 계획이다.

정작 황새 복원 발상지인 청주에서는 황새 관련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지난해 연구원을 탈출한 ‘B49’번 인식표를 단 황새 ‘미호’가 올해 청주시 옥산 미호천과 충남 천수만, 진천 백곡천 등에서 발견됐다. 둥지를 떠난 황새가 본능적으로 둥지 주변을 맴도는 귀소본능이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찾아올지는 미지수다. 미호천과 주변 들녘이 심각하게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황새가 찾아와도 머물며 살아갈 환경이 미흡하다. 오래전 삼호리 물푸레나무와 같은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은 황새만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황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전에 친환경 농법이용과 미호천 생태계 복원 등을 통해 황새가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먼저 만들어가는 일이 절실하다. 그것이 결국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애기자(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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