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커다란 획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사망원인은 고령인데다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이 겹쳤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6년 전 먼저 세상을 뜬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서거함으로써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이끌었던 ‘양 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치권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민주화의 큰 별이자 문민시대를 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으로 정치사에 길이 남을 큰 지도자’라고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신명을 바쳤으며 우리 정치사에서 군부시대를 청산하고 문민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장택상(1893~1969년) 국무총리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이후 9선 의원을 지냈다.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고,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총재에 올랐다. 1990년에는 민주자유당을 창당해 대표최고위원이 됐고,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금융실명제 도입과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이며 이에 반해 무리한 개방과 세계화 정책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아쉬운 평가도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금리자유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한 기반을 닦았지만 이듬해 금융·외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1997년 11월 IMF에 긴급구제금융 지원을 정식으로 요청하게 된다. 이를 두고 대내외적으로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비판과 함께 성급하게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어진 대기업 부도사태와 금융 붕괴, 대규모 실업은 국민의 자존심과 생활에 엄청난 타격이 됐고,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충격과 변화를 몰고 왔다.

민주화와 투쟁·대결, 영·호남 정치를 상징하는 양 김 역사의 종언은 우리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 정세가 IMF시절 못지않다. 국민적 단합과 정치권의 대화·타협이 절실하다. 정치권이 대립과 반목에서 벗어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한다. 한국현대 정치사의 상징이었던 ‘3김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우리 정치사도 새로운 시대를 열며 대변혁이 찾아오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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