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작은아버지 칠순잔치에서였다. 아버지께서 노래를 부르셨다. 아버지 노래를 그날 처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주 드물게 아버지께서 부르는 노래를 듣기는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버지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나 그것은 설렘보다는 아쉬운 마음에서였다.

칠순을 맞으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와 열여섯 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막내 동생이었다. 그러니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 같았을 것이다. 조카인 나도 어려서부터 삼촌을 형처럼 따르며 함께 자랐다. 어릴 때부터 작은아버지는 끼가 넘쳤다. 특히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동네에서 개최하는 콩쿠르에는 빼놓지 않고 참가해 냄비, 양동이, 함지 같은 경품들을 싹쓸이해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작은아버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아버지는 자식 같은 막내 동생을 공부시켜 면서기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작은아버지는 도통 공부에는 관심도 없었다. 마냥 노래하는 것에만 빠져 시시때때로 아버지와 충돌을 빚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작은아버지는 그때부터 겉돌았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더욱 당신의 동생을 일방적으로 치도곤 하셨다. 조카인 나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두 분의 불편한 관계를 봐왔다. 언젠가 작은아버지는 ‘형님이 그렇게 못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난 가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원망 섞인 말을 했다. 그때 괜스레 내가 작은아버지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랬던 작은아버지가 결혼을 하고는 생활에 쫓겨 또 가수의 꿈을 접었었는데, 퇴직 후 노래봉사를 하러 다닌단 이야기를 들었다. 이따금 집안 대소사에 오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작은아버지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노래를 이제는 원 없이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래의 힘이었다. 그러더니 칠순을 앞두었던 얼마 전 당신의 노래 ‘부귀영화’를 취입해 정식으로 가수에 입문했다.

그리고 칠순 잔칫날 당신의 데뷔곡을 처음으로 손님들에게 선보였다. 조금 촌스럽기는 했지만 작은아버지는 익숙한 몸동작으로 능숙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런 작은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본 일가친척들과 손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줄줄이 동료 가수들도 나와 축하공연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일어나 무대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그렇게 반대하셨던 동생의 노래에 화답으로 노래를 부르셨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도 나가셔서 막춤을 추셨다. 친척들도 무대로 나가 막춤을 추며 어우러졌다. 아버지는 앙코르를 받아 두 곡이나 부르셨다. 칠순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요즘 촌스럽게 누가 칠순 잔치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정말 하기를 잘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간 두 분 사이에 흐르던 어색함이 모두 씻겨나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이제 얼마나 더 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뵐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혹시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셔터를 마구 눌렸다. 후일,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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