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음성군 삼성면 덕정로, 지도상에 ‘미호천’ 이름 첫 등장
(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천평리)

▲ 삼성면 덕정로 62번 길과 92번 길이 합류하는 이 지점부터 공식적으로 ‘미호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청주박물관 성재현 학예사 “미호천, 일제 강점기부터 등장”

“고전에는 물줄기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 하천 지명 없어”

최상류 양덕리~천평리 구간, 생활 폐수 등 유입 오염 심각

 

충북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처음으로 ‘미호천’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는 곳은 덕정저수지서 1.5km 하류지점이다. 동리천과 도치천이 흘러들어간 덕정저수지서 1.5km를 내려오면 삼성면 대야리서 흘러내려온 대야천과 만난다. 삼성면 덕정로 62번 길과 92번 길이 합류하는 이 지점부터 공식적으로 ‘미호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이 지점에 ‘지방하천 미호천’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표지판에는 하천구간 시점은 음성군 삼성면, 종점은 청원군 강외면이라 돼 있으며 하천연장은 15km, 유역면적은 133.27㎢로 돼 있다. 또 미호천 본류의 상류를 금왕읍 도청리에서 발원한 것으로 표기 돼 있는데 이 같은 표기들은 시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호천 본류의 상류는 마이산에서 발원한 양덕리 동리천과 도치천이 유입된 덕정저수지를 지나 대야천과 합류한 물줄기로 봐야 하며 도청천은 금왕읍 도청리쪽에서 흘러 서류하는 미호천의 지류라고 볼 수 있다.

미호천이라는 지명은 삼성면 덕정리 대야천과 합류하는 지점부터 시작돼 증평 보강천과 합류하는 청주시 오창읍 여천리까지는 지방하천, 그 아래 금강과 만나는 세종시 합강까지는 국가하천으로 분류돼 있다. 전체 길이 89km에 이르는 이 장구한 물줄기의 이름이 왜 ‘미호천’이었을까? 그 설이 분분하지만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만한 설은 아직 없다. 

국립청주박물관이 ‘까치내와 미호천, 그 삶의 여정’(2014년)을 기획하며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미호천이 지나가는 마을 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다르게 불려 왔다. 대동여지도, 동국여지도 등 18~19세기에 제작된 옛 지도를 보면 작은 하천들과의 합수머리 부근에 따라 상류부터 합강 부근까지 각각 번탄(磻灘), 오근진(梧根津: 까치내인 작천 건너편 나루터), 작천(鵲川: 현재 까치내로 불림), 진목탄(眞木灘: 미호천과 병천천이 만나는 지점), 망천(輞川: 현재의 석남천으로 추정), 부탄(浮灘:청주시 강내면 태성리 인근 동막천), 미곶(미호천과 조천이 만나는 부근), 동진(東津: 금강과 만나는 합강머리 부근)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작천(까치내)은 옛 지도 대부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작천의 현재이름인 까치내는 청주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무심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미호천 물줄기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 속한다. 미호천이 하나의 하천으로 널리 사용되고 지도상에 미호천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로 보인다.

미호천이라는 이름이 옛 책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 충청북도편 청주군’의 기록과 1923년 제작된 ‘조선지형도 청주편’에서 볼 수 있다. 조선지형도 청주편에서는 미호천이 무심천과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하류쪽은 작천, 상류쪽은 미호천이라 했다. 청주와 조치원을 잇는 다리의 명칭은 미호천교라고 표시했다. 당시 사용된 지명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이전인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근진은 고을 북쪽 20리에 있으며 청안현 번탄에서 흘러내려온다”는 구절이 있으며 ‘대동지지’에서는 “작천은 서북쪽 20리에 있는 청안의 번탄에서 서남방향으로 오근진, 작천, 진목탄, 망천, 부탄을 거쳐 흐르며 연기의 동진강에 이른다”고 돼 있다. 19세기에 간행된 ‘청주읍지’에서 “작천은 고을의 북쪽 20리에 있다. 각각 물줄기의 맥은 진천, 청안, 괴산, 회인의 경계에서 나와 작천으로 합류한다. 상류는 오근진이 되고 하류는 진목탄이 되어 연기와의 경계인 동진에 닿는다”고 돼 있다.

이러한 미호천의 유래를 ‘미곶’의 어원을 근거로 세종시 예양리 촌락인 ‘미꾸지’에서 찾기도 하지만 마이산 발원지부터 여러 지역을 지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던 하천이란 점에서 아름다운 하천인 ‘미호천(美湖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현재도 미호천의 모습은 전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는데 미호천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을 당시 1900년대는 어느 정도 아름다웠을지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까치내와 미호천, 그 삶의 여정’을 기획한 국립청주박물관 성재현 학예연구사는 “고전에서는 미호천 물줄기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하천 지명으로는 등장하지 않고 있고 미호천 유역의 지천들이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미호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지만 왜 미호천이라 했는지 현재로서 그 이유는 명시된 것이 없다. 미뤄 짐작하건데 하천자연환경이 유달리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앞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청주시의 생명줄인 미호천은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시대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유산이 되고 있다. 유수량이 많은 하천 주변은 넓은 평야지대와 나지막한 구릉, 풍부한 산림으로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특히 미호천의 풍부한 강돌은 석기를 만드는 재료로 부족함이 없었기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었던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며 “이러한 자연환경은 미호천 유역의 역사가 인간이 출현하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덕분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호천은 통합청주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생활의 터전이 되는데 동반자 역할을 해 왔다”고 밝혔다.

이날 답사한 물길은 삼성면 모래내 장터를 지나 대야천과 만나 미호천이라는 지명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천평리 도청천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약 4.5km 구간이다. 지방하천인 미호천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앞들과 산중말 앞들이 품고 있는 물줄기를 따라 가면 삼성면 소재지인 무명교와 덕정교를 차례로 지나고 가동교와 대성로를 지나면 넓은 들이 펼쳐진다. 상나무들과 어지기들, 미루들판을 지나 선정리 선정교에 다다르면 물길은 천평 3교 아래로 흐른다.

이어 천평리에서는 금왕읍에서 흘러온 도청천과 합류한다. 금왕읍 굴암산 자락 도청리에서 발원한 도청천은 도청리를 지나 신평리와 행제리를 지나 삼성면 천평리에서 미호천과 합류하는 것으로 미호천이 첫 번째로 만나는 지천인 셈이다.

미호천 주변으로 형성된 마을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외형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수십년 전 미호천에서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잡던 시절의 문화로 되돌려놓는 일이 불가능할까? 얼마든지 가능성 있다고 본다. 정화기술발달의 힘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현재는 자연정화보다는 정부나 자치단체가 설립한 정화시설에 의존하고 있지만 결국 자연정화의 힘을 따라갈 수는 없다. 자연정화의 힘을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미호천은 오염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본류가 깨끗하려면 상류가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미호천 구간 중 최상류에 해당하는 삼성면 양덕리에서 덕정리, 삼성면 천평리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구간에서 물의 오염이 심각하다. 인근 공장이나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미호천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천 둑을 개간해 농사를 짓거나 축산농가, 넓은 들판에서 사용되는 농약 등이 주범이다. 이 구간에 대해 폐수처리시설을 늘리고 주민들의 미호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음성군의 적극적인 관심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김정애기자(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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