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특별전 ‘아름다움과 행복’
알랭 드 보통과 한국 젊은 작가 15人 협업
‘공예’+‘인문학’=현대인 위한 치유의 전시
자연·우아함 등 키워드 중심 작품 선봬
작품마다 알랭 드 보통의 재

▲ 이승희 作
▲ 가든하다 作
▲ 김재성 作
▲ 알랭 드 보통.

“예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수단이다. 삶의 경험 중에는 아름답지만 순각적으로 지나가는 것들이 무수히 많으므로 이를 담아둘 적절한 도구가 필요하다.”

공예와 인문학이 만나 완성된 알랭 드 보통 특별전 ‘아름다움과 행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과 ‘한국의 젊은 창작자 15인’이 만드는 치유의 전시다. 예술을 통한 치유의 힘을 믿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유용하고 실용적인 물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는 공예의 속성을 보여준다.

이에 알랭 드 보통과 한국공예작가들이 모인 15팀의 협업으로 공예가 지친 현대인의 일상의 일부로써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심리적 역할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공예의 쓰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한다. 알랭 드 보통은 현실적으로 유용하면서도 인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말해주는 작품들을 창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연, 우아함, 강인함, 희망, 유연함, 성숙함, 사랑, 얼굴, 현재, 기억, 편안함, 불완전함, 노력, 무시간성, 동행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술’이란 매체를 사용해 무한한 상상력과 대담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15인의 창작자들이 작가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를 통해 완성된 작품들에는 보통의 재치있는 주석들이 함께 적혀져있다. 숨어있는 보통의 글들은 색다른 전시 해석으로 생각의 자유로움을 이끈다.

●기억: 이승희

초록색 대나무 숲의 고정관념을 깨고 ‘붉은 대나무 숲’을 만들었다. 유약 ‘진사유’를 사용해 붉은 빛깔의 도자를 만들어 냈다. 만드는 과정에서 가마에 산소가 적게 유입될수록 붉은 색이 나며, 산소가 유입될수록 청자빛의 색을 띈다. 그래서 붉은 대나무 숲 중간 중간에 산소가 유입된 상태에 따라 붉은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수많은 도자 대나무의 마디는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8천여개의 대나무 마디마디는 모두 작가의 손을 거쳤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3m 높이의 도자 대나무 마디들은 작가가 틀을 사용하지 않고 물의 함유량에 따라 대나무 개체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붉은 대나무 숲에는 세가지의 기억이 담겼다. 첫번째는 관람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다. 자연의 대나무는 초록색을 띄고 유연한 느낌이며, 사군자 중 하나로 곧은 군자의 인품을 뜻한다. 하지만 도자기 대나무 숲은 유연성이 없으며 깨지기 쉬워 우리가 알고 있던 대나무의 기억과 많이 다르다. 작가는 도자기 대나무 숲을 걸으며 우리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길 바라고 있다.

두번째는 작가의 기억이다. 작가의 대학시절은 사상 대립으로 붉은색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충북 문의면과 중국 경덕진에서 작업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공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7년전 기획을 해 드로잉으로 남겨두었던 붉은 대나무 숲이 알랭 드 보통의 제안에 ‘사색을 위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319그루의 붉은 대나무 숲을 산책하며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삶을 떠나 ‘지금 여기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자연: 가든하다

“행복하고 선량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에 훌륭한 가치를 전해주는 물건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알랭 드 보통

콘크리트의 차갑고 딱딱한 느낌의 불규칙한 형태의 화분에 다육 식물과 선인장을 심어 도시 속 정원을 완성했다.

‘가든하다’는 도시 속 정원을 모토로 메마르고 거친 삶에 작은 식물 하나를 시작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팀이다.

‘가든하다’라는 말은 다루기에 가볍고 간편하거나 손쉽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가드닝을 통해 바쁜 일상의 마음 한켠을 가벼이 비워보자는 영어와 우리말의 의미를 다 담는 재치있는 작명이다. 가든하다의 팀장이 군대에서 요리를 하던 중 지시로 텃밭을 가꾸게 되면서 알게된 즐거움이 지금의 도심 속 작은 정원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사선들의 불규칙한 조합으로 현대의 아파트와 건물을 보는 듯한 화분의 이색적인 모양에 선인장과 다육식물들이 심겨져 있다. 다육식물들과 선인장은 도시 주거공간에 잘 적응하고 자주 신경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잘 자라는 생명력을 지닌 식물들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조형미가 느껴지는 도도한 화병에 들풀 한가지만 꽂아두어도 풍부한 표정을 머금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자연을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은 매개체가 되어 현대인들에게 잠깐 여유를 즐기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공예를 만난 작은 자연의 조각들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생명의 기쁨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얼굴: 염승일

“우리는 누군가의 잘 생긴 이마, 아름답고 우수에 찬 눈빛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친절하고 관대한 표정, 평화로운 시선, 신뢰할 수 있는 얼굴, 정직한 코 등을 지적하고 칭찬하자. 만일 우리가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에 주위를 돌린다면, 사람의 얼굴에서 훌륭하고 매력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알랭 드 보통

염승일 작가는 시각디자이너 출신 작가로서 디자인과 개념예술을 넘나들며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예술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그가 산업화로 많은 부분이 기계화가 되어 가고 있는 공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공예인가?’ 이런 물음에 그는 도구나 재질을 떠나 공예는 ‘정성스러움’이 담겨야 된다고 답한다.

작가의 개성넘치고 아기자기한 정성스러움은 ‘얼굴’을 통해 또 다른 공예의 세계를 보여준다. CNC커팅, 사포질, 접착, 페인팅 등을 통해 만화틱하게 표현된 얼굴의 다채로운 색감과 표정은 행복을 말한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말하듯 웃고, 찡그리고, 미소 짓고, 우는 다양한 표현으로 제시된 작품 앞에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기도, 의아해하기도 한다.

●성숙함: 문채훈

문채훈 작가는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디자이너이자 옻칠 공예가다.

옻칠의 아름다움을 미묘하고 신비로운 빛깔로 시각화 한 것을 보고 알랭 드 보통은 ‘성숙함’을 주제로 제안했다. 이에 그는 두가지의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먼저 ‘소반’이다. 전통 소반의 형태에 금속과 옻칠을 더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소반은 작고 가벼워 이동이 편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과거에는 조그만 소반을 옮겨다니며 가는 곳마다 음식을 올려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소반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해볼 수 있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성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다음에는 ‘침(베게)’이다. 과거의 목침이 아닌 삼베에 옻칠을 해 겹겹이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5mm의 두께를 만들어 침을 완성했다. 딱딱한 나무에 머리를 대고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져들며 잠깐 휴식을 취하게끔 도와주었던 목침에 나 자신과의 대화의 매개체로 의미를 부여했다.

옛 선조의 지혜가 담긴 소반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쓰이는 매개체이고 목침은 베개의 쓰임이 아닌 잠깐 생각할 수 있는 휴식의 의미로 나와의 대화에서 쓰이는 매개체다. 작가는 대화의 소통으로 성숙해짐을 표현했다.

●편안함: 이유주

전통 한지에 판화기법을 통해 추억이 깃든 그래픽을 넣은 실용적이고 위트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다.

‘편안함’이라는 주제어에 작가는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과거 할머니와 어머니의 품속에서 느꼈던 시간을 작품을 통해 되살렸다. 전시장 한켠을 가구와 병풍이 놓여진 방으로 꾸며놓은 작가는 평안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방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조명은 한복의 속치마를 연상시키듯 엄마와 함께 했던 뱃속 자궁을 뜻한다.

또 방에는 천을 뒤집어 쓰고 있는 가구들이 놓여져있다. 실크스크린 기법과 모나미 볼펜으로 선을 그어 완성했다는 가구들에는 오랜시간 정성을 들인 작가의 시간과 노력이 느껴진다.

여기에 할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병풍과 엄마가 직접 수를 놓은 돗자리와 방석이 더해져 ‘3모녀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사람은 없어도 그들의 손길이 배어나 따스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불완전함: 이재범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양모펠트로 따뜻한 옷을 입혔다. 평범하고 소박한 돌멩이의 의연한 모습으로 표현된 펠트 작품은 현대인의 강박을 덜어주고 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을 건넨다. 돌처럼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안아주고 배려해주는 과정을 통해 돌멩이가 따뜻한 옷을 입듯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20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펠트를 지속해온 작가는 흩뿌려진 돌멩이와 같은 효과를 내기위해 몇 달간을 온전히 창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어른 주먹만한 조약돌 모양의 펠트 하나를 꼬박 반나절 걸려 완성한다고 한다. 200여개가 되는 작품을 준비하는데 쏟은 정성이 짐작된다. 모양과 빛깔이 제각각인 돌멩이들이 하나의 완벽한 모습으로 정형화될 수 없듯 약간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삶의 태도를 곱씹게 해준다.

●희망: 김재성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르는 루돌프들처럼 공중을 향해 달려가는 사슴의 무리는 아름답다. 굵은 와이어를 구부려 용접하는 방식으로 뼈대를 만들고, 아교로 한지를 붙여 완성한 12마리의 사슴이 무리지어 빛을 발한다.

작가는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연약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다. 맹수를 피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위해 무리지어다니며 또 다른 생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슴을 통해 ‘희망’를 이야기한다.

●사랑: 서하나·유대영

한지에 분채·석채 등의 채색 재료를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화작업을 하는 서하나 작가와 현대적 디자인을 토대로 영상과 그래픽 작업을 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유대영 작가의 첫 협업이다. 두 작가는 ‘사랑’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으로 정의한다.

한국화가인 서하나 작가는 흙으로 만든 분채와 돌로 만든 석채를 이용해 한지에 아름다운 꽃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작가는 하루의 일상을 일기 쓰듯 그림 속에 그려놓았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꽃 그림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과 함께 작가의 일상이 보인다.

물놀이 장면, 야자수, 피아노 건반, 신발, 화분 등 작가의 숨겨진 일상을 찾아보며 작가의 일상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감각적인 미디어 설치 작업을 보여주는 유대영 작가는 꽃을 품은 숲을 연상시키는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다. 신기한 거울과 함께 설치된다. 작품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장치로 사용된 거울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찰나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대상을 더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유연함: 김희찬

2013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뉴욕 브룩클린에 거주하며 강의 및 창작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다.

곤충을 모티브로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모듈을 바구니를 짜는 방식의 전통공예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각 이음새는 플라스틱으로 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 두꺼우면서도 유연한 재질의 갈대가 필요해 미국 갈대를 직접 수입 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메이드 인 차이나’로 적혀져 있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전했다. 3D 프린팅과 전통공예, 플라스틱과 갈대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은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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