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세태를 꼬집는 유행어로 고착화됐다. 같은 직장에서 휴가를 다녀 온 직원에게 “당신이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더라”는 뼈있는 농담 한마디에 마치 퇴출 대상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이 굳어지기 마련이다. 정치판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낙선의 대상이 돼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후안무치한 정치인을 보면 측은함마저 든다.

열린 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지난 5일 ‘탄핵철회 대표회담’을 제안하자 야당은 ‘60~70대 투표 불필요’ 발언파문을 잠재우고 선거에 유리한 탄핵문제로 되돌려 놓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고 일축하면서 여야가 서로 네 탓만 하고 있어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론분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총선이 8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각 정당 후보들은 인물 정책대결은커녕 시류에 편승해 대부분 선심일색의 급조된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후보들은 유권자의 ‘입맛’에만 맞춰 현실성이 결여된 채 “내가 당선돼야 올바르게 국정을 이끌 수 있고 국민을 위한 참 정치를 펼 수 있다”며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을 쏟아내고 있다.

도지사, 시장·군수 등 선거직 역시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자신이 아니면 지역발전이 어렵다는 등 선거 때마다 자기 도취에 빠진 이들의 감언이설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리현상이기도 하다. 지금 전국에 출마한 1천여 명이 넘는 17대 총선 후보들 역시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나만이이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일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나 없이도 돌아가는 것이 어딘지 섭섭하고 버림받은 것같은 기분에 사로잡힐만도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끔씩 “내가 아니면…”, “내가 없다면…”, “나만이…”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자아도취의 경지를 넘어 ‘나만이이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 ‘셋만 모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나만이이즘의 소치요, 매사에 남의 의견은 수렴도, 조화도, 타협도, 양보도 하려들지 않는 것도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나만이이즘의 소산이다.

스위스의 유아(幼兒)심리학자 피아제는 ‘나만이이즘은 유아기에 표출되는 일반적 사고’라 말했다. 유달리 한국인에게 나만이이즘이 강한 것은 어린아이가 다 성장하도록 응석이 받아들여지는 과보호성의 육아문화가 유아성을 오래 보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이 곳 저곳 떠돌며 낯선 문화와 도덕·가치관·의견과 접하며 그것을 존중하고 조화시키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반면, 이런 체험이 없는 한국인들은 ‘독불장군(獨不將軍)’식의 나만이이즘이 되기 마련이다.

부처님 말씀에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다. 즉 천녀(天女)는 물을 주옥(珠玉)으로 보고, 악마는 물을 피(血)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것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물을 주옥 또는 피로 본다고 해서 천녀와 악마에게까지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만이이즘을 경계하는 설법이다.

‘돈은 묶고 말(口)은 푼다’는 이번 선거의 두드러진 현상은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인신공격과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나만이이즘이 선거 중반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만이 최고요, 나 아니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나만이이즘의 경합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사람을 잘못 선택하면 4년 간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 뽑힌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만이이즘이 아닌 ‘너만이이즘’의 후보를 선택해야 할 중요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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