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팔 현 <충북대 정치외교학과·문학박사>

대학 재학 때 한·일 간에  큰 이슈문제로 부각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는 필자로 하여금 일본연구를 재촉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후 독학으로 일본어와 일본역사를 배우면서 일본, 일본인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일본연구한지가 20년이 넘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신성한 국방의무를 마치기 위해 육군 장교로 군에 입대, 6년 반 근무하고 나니, 30대 초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러한 나이가 일본연구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필자는 ‘범을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한다’는 말대로 십여 년간 연구해오던 일본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리고 군대 생활보다 긴 9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 일본인 연구에 올인하게 됐던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참으로 친절하고 상냥했다. 처음 86년에 연수차 잠시 들를 때부터 느끼던 감정 그대로이다. 우리가 배울만한 국민성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를 친절함과 상냥함만 보고 일본 정치나 정치인들까지 동일선상으로 본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일본국민은 선량하지만, 힘없는 다수의 국민 대 소수이지만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우익정치인 그룹으로 구분해서 봐야한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미국인 베네딕트가 간파했듯이 일본인들은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민족이다. 겉모습은 부드럽지만, 속에는 항상 비수를 감춘 민족이라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필자가 보는 현재의 일본은 ‘양복 입은 사무라이 국가’라는 결론이다. 일본인들을 보면 정말로 싱글싱글 웃으면서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 선량한 일본 국민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저항정신이 약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책에 힘없이 동원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고, 이러한 점은 역사적으로 입증되고도 남는다.

결국 일본의 소수 국수주의적 우익정치인들이 나라를 잘못 이끌면 언제라도 선량한 국민들은 비판이나 저항도 없이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미·일전쟁과 같은 전란에 동원되는 것이다. 오히려 선량하기만 했던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예의 집단적 악마로 변신되는 것이다.

단체가 일으키는 일에는 선·악 구분 못하고 뛰어드는 일본인 특유의 집단성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 순한 양들은 집단이라는 힘을 믿고 어느새 눈에 독기를 품은 ‘카미카제 전사’로 돌변하는 것이다. 마치 ‘마츠리(축제)’라도 즐기는 듯 그들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짐승이 되는 것이다.

일본 국민성의 이중성은 바로 친절과 상냥함으로 대표되는 생활화된 겉모습과 보이지 않는 내면성의 엄청난 괴리현상에서 찾아야한다. 특히 선량한 이들 국민들은 결국 우익정치인들이 이끄는 대로 동원되는 순한 양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이 무서운 것이다. 언제라도 무서운 이리떼로 돌변할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세계평화’를 외치나 벌써 유사법제가 통과되고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등 군국회귀를 마친 상태나 다름없다. 겉모습은 개발도상국에 ODA자금을 듬뿍 선사하면서 웃음 짓듯이 양복 입은 신사처럼 보이는 고이즈미 수상도 알고 보면 속내는 토요토미와 같은 중세의 사무라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일본인의 이중성을 우리는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웃 일본은 우리가 알고 항상 대비해야할 나라이지, 아직까지도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나, 동맹국가로 인식하기에는 너무나 멀고도 먼 이국(異國)에 불과하다. 절대로 일본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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