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잔꾀를 쓴 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밤길이었다. 문의를 지나 회남 쪽으로 가다 구룡리에서 질러간다고 샛길로 빠진 것이 두려움과 공포의 시작이었다. 매양 하던 대로 큰길을 따라갔더라면 곧바로 친구도 만났을 것이고, 나의 허세도 드러나지 않았을 터였다.

추석도 지난 며칠 뒤, 친구가 바람도 선선해지고 아직 보름달도 남아있으니 회남에서 문의까지 밤길을 한 번 걷자고 했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일이 생겨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친구는 일과가 끝난 저녁 나절에 혼자 버스를 타고 회남으로 갔다.

추석명절이 지난 후이니 그리 밝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며칠 전 ‘슈퍼문’의 밝은 달을 떠올리며 그윽한 분위기에 취해 밤길을 걸으리라는 모처럼의 기대가 깨어져버려 아쉽기만 했다. 달밤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먹고사는 일이 우선인지라 아쉬운 마음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이 일찍 끝나 친구와 합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추석에 남은 과일을 깎아 봉지에 담은 후 연락을 했다. 친구는 이미 염티재를 넘었다며 산덕리 쯤에서 만나자고 했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려는 마음에 급해진 나는 서둘러 차를 몰았다. 도심과 시 외곽의 시골은 시차가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에는 오가는 차들부터 뜸해졌다. 고은 삼거리를 지나 문의 쪽으로 들어서니 한밤중이었고, 문의를 지나 회인 쪽으로 방향을 틀자 이슥한 밤처럼 느껴졌다. 사방은 고요했다.

달조차 며칠 전 그 달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리 밝던 달이 오늘따라 구름 속을 들락거리며 깜빡이는 전등처럼 달리는 앞길을 어지럽혔다. 올여름에도 보기 힘들었던 세찬 바람까지 나뭇가지들을 마구 흔들어댔다. 저녁 뉴스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그 영향인가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스의 사실적인 내용이 뒤숭숭한 생각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혼자 운전하고 가는 길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자동차 실내등을 켰다. 그래도 외로움과 두려움은 쉽사리 가셔지지 않았다.

구룡이 가까워지며 마을 보안등이 보이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불빛 하나가 이렇게 위안을 준다는 사실에 새삼 에디슨이 고마워졌다. 그때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룡리 마을길로 들어섰다. 전에도 몇 번 지나간 적이 있는 지름길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불찰이었다. 어느 순간 차는 생소한 산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마을도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나는 깊은 산골짜기에 그것도 한밤중에 나 홀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달려들 것만 같아서였다.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괴기영화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내 실수에 대한 화도 나지 않았다. 화를 내는 것도 뭔가 믿을 구석이 있을 때였다.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머리칼이 쭈뼛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름이 ‘쫙’ 돋았다. 공포였다. 나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동안 내가 큰소리를 쳐왔던 모든 것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뭘 믿고 허세를 부려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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