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세상의 많은 물건들과 이치와 법들에서는 많아야 얻어지는 것이 있고 많으면 얻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적어야 얻어지는 것도 있고 적으면 얻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오래 전에 아주 영명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지혜가 너무나 뛰어나서 솟아나는 우물물처럼 그 끝을 알 수가 없었지. 그리고 그 친구는 지혜에 버금 갈 만큼 욕심도 많았다지. 그래서 그는 천 냥의 돈으로 천하를 얻을 수가 있었고 또 다시 십만 냥의 돈으로 천하를 잃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천 냥으로 천하(天下)를 얻었다는 지혜(智慧)가 후세까지 전해졌고 십만 냥으로 천하를 잃었다는 탐욕(貪慾)도 후세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았겠는가.

다만, 그가 처음에는 천 냥과 겸손(謙遜)으로 백성을 토양처럼 여겼고 나중에는 십만 냥과 교만(驕慢)으로 백성 위에서 군림을 하였다니 토양과 같은 천하와 그 사람의 통로가 막히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군주라 자칭하는 그는 아랫사람의 말을 청하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천하의 사람들은 말을 해봐야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그가 홀로이서 똑똑한 천하의 주인 일뿐 아무도 그가 천하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물론, 그가 군주가 되었고 군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자리에 있다고 하여서 자리의 주인 일 수가 없지.

설혹, 그 자리를 오래 지킨다고 할지라도 흐르는 세월이야 오죽이나 빠르던가. 옛 사람이 말하기를 “일생(一生)을 문틈으로 지나가는 백말을 보는 듯 쉬이 간다.”고 말을 하였다니, 군주라고 할지라도 찰나(刹那)의 영욕 때문에 영겁의 세월 위에서 죄가 많은 영혼으로 지내야 한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돌이켜 생각을 하여보면 천 냥으로 천하를 얻기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십만 냥으로 천하를 버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니 똑똑한 것은 사실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똑똑한 그도 육신과 더불어 자취가 없고 흔적도 없는 무궁의 세월로 돌아갔고 영민함도 없고 지혜도 없는 무궁의 공간으로 돌아갔으니 그가 가고 없는 세월 속에서 전설처럼 흘러 다니는 부질없는 소문만이 무성하더이다.

결국은 그도 타고난 무념의 덕택으로 념(念)을 세웠다고는 하나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영혼의 방랑자가 되었다고 하니 안 되었다는 생각에서 그가 가엽기까지 하는구려! 그런데 지금,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하였던가.

지금은 내가 이곳에서 머물지라도 언젠가는 무궁의 세월에서 하나의 티끌 조각으로 남을 터인데 지금이 가고 없는 그때의 내 영혼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먼저 생긴다. 그리고 오늘을 살았던 내가 다시 돌아오는 그날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먼저 생기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도 없는 빈 하늘에서 오늘도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은 왜 아무런 말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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