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섭 수필가

아침 햇살이 밝은 웃음처럼 다가와 살며시 나를 잡는다.

발길은 나도 모르게 언제나 걷던 산책길을 따라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사랑하는 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날 예쁘게 보아 줄 사람 하나 없어도, 천천히 하늘을 보며 가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을 돌아보며 그렇게 걸었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좋은 날씨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픈 건 무슨 이유일까?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언제나 둘이 함께하던 길을 혼자 걷자니 가슴 찢기는 아픔이 엄습해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곰곰히 지난 일을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뜨거운 눈물도 흘려 보았고, 남보다 많은 아픔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혼자만 맞는 고통이고 처절함 같아 남모르는 아픔에 가슴앓이도 했다.

고통 없이 행복 안에서만 산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렇다. 속내를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철저하게 모든 걸 감추고 혼자 인내하며 살아왔다. 어찌 생각하면 칭찬 같고, 어찌 생각하면 주제 파악을 못 한다는 느낌으로 들릴 때도 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 아니던가. 좋아지라고 해 준 이야기도 생각에 따라 아픔으로 돌아와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고,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 없이 말들을 할 때가 있다. 같은 말이라 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와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 그 뜻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며 모든 걸 아주 잘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내 삶은 다른 누가 살아주는 것도 아니요. 대신 살아 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임을 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내 새끼손가락에 박힌 가시보다 더 아프랴. 사람은 모두 내 기준, 내 잣대로 재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을 원망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간혹 사람들은 내 인생을 찾으라 한다. 어떤 게 진정한 내 인생인지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적어도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아니하고 아이들에게는 충실한 어머니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고통이 너무 커져 막바지에 이르러 더 이상의 아픔은 없으리라 죽고 싶은 마음이라면 죽을힘을 다하여 살자. 너무 큰 아픔은 내게 오기 같은 걸 남겨 주었다.

제2의 인생, 어쩌면 이미 한번 죽고 인생을 두 번째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모든 것을 벗어나야 한다. 슬픔도, 괴로움도, 욕심도, 그저 마음을 비우고 살면 아무것도 나를 괴롭히진 않으리라. 가득 찬 그릇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지만 빈 그릇, 공간이 크면 클수록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음이니 나의 빈 가슴은 채울 공간이 너무 많아지겠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미움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리라 암울했던 마음 훌훌 털어 버리고 삶의 소중한 의미도 찾았고,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갈 자력도 찾았다. 같은 하늘, 같은 모습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세상은 슬픔이 아니다. 모두가 행복이고 축복이고 사랑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내 탓이요’를 마음 깊이 다짐하며,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리라. 어두운 얼굴로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진 않으리라. 밝고 환한 미소로 그렇게 행복만을 추구하고 노래하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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