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장차 어른이 되어 가장 하고 싶은 직업 중의 하나다. 빨간 소방차를 타고 길거리를 쏜살같이 달려가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모습이 멋져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판단이 달라진다.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업무를 보다 순직한 소방관은 33명이다. 이 기간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자살한 소방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명(54%)은 신변비관으로 인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명중 4명이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상처를 안고 있다. 공황장애, 수면장애, 분노조절장애, 불면증, 외상후 스트레스 등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소방관의 숫자가 2만명이 넘는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모두 사망사고 등 참혹한 재난현장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탓이다.

소방관들에게 정신질환이 만연해 있는 것은 위험하고 불규칙적인 근무환경과 재난현장을 누비는 업무과정에서의 특수성이 주요인이다. 소방관들이 끔찍한 사고현장을 목격한 뒤 1개월 이내 치료경험이 있는 경우는 3.2%에 불과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하루하루를 위험한 현장에 내몰면서 그들의 정신건강을 챙겨줄 근무환경 개선에는 소홀하기 짝이 없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소방관들을 심리적 질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문병원 설립이 시급함도 반증한다.

근무복지가 이런데 위기에 처한 소방관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도 미비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에는 안전검사도 받지 않은 방화복이 소방관들에게 지급돼 공분을 샀다.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을 보호해야 할 방화복이 ‘짝퉁’이었다니 한숨만 나온다. 최근에는 성능을 보장할 수 없는 짝퉁 제품들이 인명구조 장비로 대거 납품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 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19구조장비 구매과정에서 76억8천만원의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도 확인됐다.

일선에선 예산부족으로 소방관들이 개인 돈으로 장갑을 사서 쓰거나 방화복을 돌려 입는다고 한다. 소방관은 위험한 사고와 화재발생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마지막 보루다. 그들의 안전을 도외시하면 국민의 안전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소방관의 쾌적한 근무환경 조성과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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